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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승리, 그래도…….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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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승리, 그래도…….

- 31년 장애계 희망,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2019년 한 해를 마무리 하며 -

최문정(프리랜서)

 

절반의 승리, 그래도 이미지 < 출처 : 노동과 세계 >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 (중략)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 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중에서 -



  2019년 7월 1일. 1988년 11월부터 실시된 장애등급제가 마침내 폐지되었다.

  그동안 장애인들에게는 6개의 등급이 있었다. 등급에 따라 서비스가 다르게 제공되어 왔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각종 지원이 장애등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되어 왔고 이런 방식은 장애인의 개별적 욕구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비판, 장애인 복지가 심화됨에 따라서 장애등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복지 시스템이 장애인들에게는 자신들의 개별적인 장애 상태와 생활환경 가구 여건들을 고려하지 못하는 것으로 문제가 제기 됐다.

  기존 장애등급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애등급제 하에서는 정책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서비스가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급 때문에 신청조차 못하고 서비스를 받지 못해서 화재 및 어떤 사고에 의해서 사망하는 사고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애 등급제는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못 간다는 맹점 때문에 폐지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장애계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고,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무려 1842일의 농성도 불사해왔다. 그 결과가 2019년 7월. 31년 만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것이다. 이날 한 운동가는 한국 장애인 운동의 역사는 7월1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했다.


장애등급제 대신 더 복잡한 종합조사표 등장

  그럼 무엇이 어떻게 바뀌느냐 등급제 대신에 장애정도를 1~3급은 장애 정도가 심한 사람, 4~6급은 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 한다. 중증/경증 구분이 남아있는 이유는 기존에 중증 장애인에 대한 우대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중증과 경증을 구분, 유지한다는 것 과 활동지원서비스를 장애등급과 상관없이 활동지원서비스 신청이 가능 해졌으며 활동지원 신청대상 및 지원시간이 대폭 확대가 되었다.

  그런데 등급 분류는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화되었는데 ‘종합조사표’라고 하는 복잡한 점수표가 생겨났다. 종합조사표에 따라 장애인들은 저마다 수능점수 같은 점수를 받는다. 사회활동과 가구 환경도 고려하지만 각자의 장애에서 파생한 기능 제한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를테면 혼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없으면 24점을 받는다. 그러나 보고 듣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총점에서 36점이 깎인다. 공격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다시 8점이 깎이고, 약간이나마 주의력을 갖추었다면 20점 중에서 10점 정도는 사라진다. 그런데 종일 누워 지내야 하는 최중증지체장애인이라고 해도 현재의 서비스 등급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인지행동에 문제가 없으면 특정 과목을 응시하지 않은 학생처럼 8개 항목 94점이 모두 날아간다. 거기에 보고 듣기까지 가능하면 36점이 추가로 사라진다. 이렇게 잃은 130점은 한 달 최대로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에서 120시간을 잃었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월 120시간의 삶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시민이 활동서비스 지원을 신청하면 공무원이 당사자를 만나 상황을 확인한 뒤 서비스 제공량을 확정해준다. 발달장애인처럼 특별한 손상을 가진 시민들에게는 의사결정 조언, 야외활동 동행, 친구 서비스, 함께 머물러 주기 등등 별도의 열 가지 서비스가 지원된다. 인상적인 것은 달랑 두 장 자리 신청서다. 항목도 단순하다. 이름과 주소를 적고 필요한 서비스를 적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공무원이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 내용을 확인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9년. 31년 만의 장애계 희망, 장애등급제가 폐지됐지만 장애계는 정말 환하게 웃지 못했다. 더 복잡한 조사표가 등장한데다 예산 확보도 되지 않은 상태여서 실질적인 서비스 지원이 제대로 이뤄질까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2019년 7월. 장애계는 “그래도”를 외친다. 2020년에도 어김없이 “그래도”를 외칠 것임에 분명하다. 언젠가 우리도 이렇게 달랑 몇 장짜리 신청서 하나로 장애인별 개별 맞춤 서비스가 실시되어 김승희 시인의 시구처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하며 마무리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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