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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대신 하게 할 것, 강요하는 대신 필요하게 할 것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을 꿈꾸며(1)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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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대신 하게 할 것, 강요하는 대신 필요하게 할 것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을 꿈꾸며(1)

조원석(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다이어리 일정에 벌써 연말 행사 세 개가 적힌걸 보니, 또 한 해가 끝나간다는 것이 실감난다. 한 해를 돌아보고 잘 마무리하자는 취지로 열리는 연말 행사들의 내용을 보면, 행사 내용들과는 별개로 나 자신의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한 해를 돌아본 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지난 한 달만 돌아보아도 크고 작은 일들로 가득한데다, 활동 당시에는 이건 올해의 손꼽을 만한 일이다고 생각했던 일도 활동이 끝나고 다른 활동에 집중하다보면 까마득히 먼 과거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러니 올 한 해 경험했던 일 중 Top 5를 꼽는 것 또한 간단하지 않다.
학업으로 주전공인 사회복지학과 더불어 언론홍보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올해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사회과학계열 학문이 그렇겠지만 특히 시청각적 정보습득을 중요한 탐구 도구로 하는 언론홍보학 공부를 시작하며 시청각중복장애(시청각중복장애란 시각과 청각에 중복으로 장애가 있는 상태를 말함. 영어권에서는 이를 Deaf-Blindness라 함.)로 인해 겪은 그간의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난관과 시행착오를 마주한 지난 학기와 이번 학기를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이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들었는지 고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올해의 Top 5 경험을 꼽는 것은 어렵지만, 이번 해에는 여느 해와 다르게 경험한 일이 있어 Top1은 주저하지 않고 분명히 꼽을 수 있다. 올해 내가 성장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 꼽을 수 있는 사건, 그것은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에 참여한 것이다.
장애청년드림팀은 장애/비장애청년을 대상으로 신한금융그룹과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연수 프로그램이다. 나는 '달팽이 날다‘ 팀원으로 12기에 선발되어 팀원들과 8박 10일간 미 서부 LA와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였다. 연수 주제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자립지원 교육’이었고, 특히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의사소통법에 초점을 맞춰 연수를 진행하였다.
현지에서 머문 기간은 8일에 불과한 짧은 연수였지만, 주어진 8일간 한국에는 법적 정의조차 없는 시청각중복장애에 대해 가능한 많은 것을 상세히 배우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출국 전에는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 분석하며 연수를 준비했고, 현지에서는 쉼 없는 일정으로 녹초가 되었어도 밤에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고 준비한 자료를 재차 확인하였다. 고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의미가 큰 활동이었다.

내가 장애청년드림팀 연수에 이토록 집중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우선 외부 환경요인으로, 함께 간 팀원 모두가 각자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내게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내 청력으로는 대화가 어려운 거리에 있는 사람의 의사를 내 곁에 있는 팀원이 자신의 음성이나 컴퓨터 타이핑, 또는 손가락 점자('손가락 점자'는 일본 시청각중복장애인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가 처음 만들어 사용한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의사소통 방법 중 하나로,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손가락 뒷면에 점자타이퍼기기를 두드리듯 터치하여 의사소통하는 방법임.)가 가능한 팀원은 내 손 등에 점자 타이핑을 쳐가며 시각적, 청각적 정보를 끊임없이 전해주고자 노력했다. 다른 하나는 심리적 요인으로, 국내에서는 문제의식조차 되지 않고 있는 내 장애와 관련하여 그간 어디서도 답을 들을 수 없었던 의문들에 대해서 이번 연수를 통한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답을 얻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나는 왜 시청각중복장애라는 내 속성에 관한 정보에 그토록 매달리는가? 한 마디로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시청각중복장애라는 내 장애와 더불어 단지 내가 속해 있는 곳으로부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은 것뿐이다. 대한민국이 나를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성별로는 남성으로 인정해주었듯이, 시청각중복장애인으로 인정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선진국은 물론 우리보다 경제 성장이 더딘 국가에서도 인정하는 시청각중복장애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세우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를 시각장애인 또는 청각장애인으로만 인정하며, 시청각중복장애라는 특성을 고려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나에게 있어 헌법에서도 명시된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와 의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상황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을 Deaf-Blind라는 법정 장애인으로 인정하여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었는데 이와 관련된 주제로 현재 미국에서 연수를 진행하고 있기에 나는 더욱더 그 내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는 비단 해당 내용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청각중복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내 삶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스스로 마련하고자하는 노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시청각중복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과 똑같이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비장애인과 똑같은 자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 이전에 비록 자립하지 못한 채 타인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생활 정도는 스스로가 할 수 있게끔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제도적 기반의 마련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 본 기사는 11월, 12월에 걸쳐 연재합니다. 『웹진 통(通)』 제69호에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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