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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살아볼만 하다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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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노동자를 만났다.
김시연(43)씨는 조선소 노동자였다.

그는 용접공으로 근무하던 중 절단하고 남은 쇳덩이를 들어 옮기려고 힘을 주는 순간 허리를 삐끗해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 이후 통증이 계속되고 다리까지 확대돼 도저히 근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휴직계를 내고 허리 전문 병원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기도 했다. 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추간판탈출증’으로 확인돼 산재 신청을 했지만 업무와 관련 없는 기왕증(퇴행성)이라는 이유로 기각 처리 됐다고 한다.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어려움 중에 하나는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경우, 이른바 ‘산재’를 당했을 때가 아닐까. 한 가정의 가장이 부상이나 질병으로 느닷없이 쓰러져 버리면 생계에 엄청난 타격이 된다. 게다가 산재까지 인정되지 않으면 그 가정은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보통 산업 현장에서의 추락, 충돌 등의 ‘사고성’ 재해는 쉡게 산재로 인정되지만 질병의 경우에는 업무와 관련 없이 생긴 기존의 증상, 즉 이른바 ‘기왕증’이라는 이유로 산재로 승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고를 당한 이후 김씨는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계속 근무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회사는 사규에 따라 산재가 아닌 개인 질병은 6개월 이상 휴직이 곤란하다고 하면서 복직해서 근무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에 불응하면 사규 위반으로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회사에서 자신을 산재로 처리해 주지 않고, 해고를 한다고 하니 그는 청천벽력처럼 앞이 까마득하기만 하여 도저히 이대로 당할 수는 없겠다 싶어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소송에서 이기면 산재로 승인돼 소급해 휴직 처리가 되므로 복직이 가능하지만 소송에서 지면 해고돼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그는 없는 돈을 마련해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김씨의 상병명이 ‘추간판탈출증’인지 아니면 ‘추간판팽륜’인지였다. 추간판탈출증이라고 하면 외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고, 추간판팽륜이라면 자연적인 노화로 인한 퇴행성(기왕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병명’ 자체가 업무상 재해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던 것이다.

그 지리한 공방은 2년 동안 계속 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1심 판결에서 ‘가벼운 중심성 추간판탈출증’에 해당된다는 결과가 나왔고, 어렵게 산재라는 것을 입증해 내게 되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항소했고, 항소심에서도 패소하자 다시 상고했고, 대법원까지 가서도 결국 김씨가 승소했다고 한다. 김씨는 처음에는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담담하게 얘기해 나가다가 법정 공방을 하며 가족과 자신이 겪은 심리적 고통이 되살아나는지 눈 주위가 붉어졌다.

실제로 허리가 아픈데도 꾀병환자로 몰려서 회사에서 쫓겨날 위기까지 맞이하면서 그는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부인도 그 때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위장병을 앓고 있다며 가족에게도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지금까지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김씨는 지금까지도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치료를 열심히 받았지만 그래도 원래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어려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원래 건강한 상태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해 신세한탄을 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요즘 산재 장애인을 위한 선천성 장애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처럼 사고로 장애를 입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자신처럼 법정 공방까지 가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인터넷에 블로그를 마련해 운영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고민하는 것 보다 여러 사람이 고민하면 해답이 나올 것이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당사자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그는 믿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은 늘 새로운 꿈을 꾼다고 했다. 육신의 장애가 정신의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그는 오늘도 산재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 위하여 열심히 귀를 열어 두고 있다.

그의 넉넉해진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 사진 한 컷 찍으면 안 되겠냐 했더니 조금 더 준비가 된 상태에서 자신을 알리고 싶다며 다음번에 블로그를 제대로 만들면 그 때 다시 한 번 찾아와 달라고 말했다. 소송을 하면서 마음 고생이 심했던 그가 아직까지 세상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듯 했다.

옆에 세워 두웠던 목발을 챙기며 그에게 인사를 건네며 돌아 나오는데 그가 내 등 뒤에서 힘껏 소리쳤다.

“우리 힘냅시다. 된다고 믿으니 그래도 됩디다.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 만 허요. 하하하”

그의 헛헛한 웃음소리가 돌아오는 내내 내 귓전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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