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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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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박민영(통통기자단)
세상은 소리 없고 고요한 곳인 줄 알았다. 비행기 소리에도 반응이 없을 정도로 심각해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후 인공와우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받은 후에는 소리는 들렸지만 입모양을 보지 않고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나의 상태는 수업시간에 문제가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선생님께서 판서를 하며 수업을 하여 선생님의 입모양을 읽을 기회가 잘 없었던 것이다. 수업을 듣지 못하니 시험기간에 자습서만으로 벼락치기 공부를 하였지만 성적은 항상 좋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공부를 하려는 습관이 몸에 배이게 되었다. 고등학교로 올라와서도 중학교 때처럼 시험기간에만 벼락치기로 내신을 준비했고 예상과 달리 성적이 떨어졌다. 떨어진 성적은 날 의기소침하게 했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때부터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선생님 말에 경청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공부할 때 중요한 것은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선생님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앞자리에 고정으로 앉게 되었고, 수업하시는 선생님의 입모양을 읽으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놓친 부분이나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은 선생님께 질문을 해서 채워나갔고, 친구들의 노트를 빌려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 필기내용을 읽으면서, 꾸준히 복습을 했다. 또한 학교에서 나눠준 학습 플래너를 활용하여 꼼꼼히 학습계획을 짜서 공부했고, 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계획을 세운 다음 꾸준히 실천하는 습관을 길들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청력을 완전히 잃은 나는 발음을 들을 수 없었고, 입모양으로 말을 배웠다. 그러다보니 발음은 제멋대로였다. 한번은 초등학교 때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다 어눌한 발음 때문에 웃음을 샀었고, 이 후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두려워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경북사대부고 박사인증제’라는 논문대회가 있었고 일반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나는 청각장애학생으로서 청각장애학생의 학습 환경이 매우 열악한 실태라는 것을 선생님을 비롯한 친구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청각장애학생의 학습권의 실태에 대한 제도적 방안 연구’라는 주제로 논문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논문을 제출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준비를 시작했지만, 논문을 제출할 무렵에야 발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발음 때문에 웃음거리가 된 기억이 떠올라 발표가 너무 두려웠고 논문을 포기하는 것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논문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과정과 설문을 도와주었던 청각장애 친구들이 생각났고, 포기하면 후회가 될 것 같아 어렵게 논문발표를 하기로 결정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언어발음치료수업을 그만 둔 탓에 모든 것이 막막했다. 그래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직접 대본을 쓰고, 발음을 표기해가면서 연습했다. 친구들은 내 옆에서 발음 교정을 도와주었고, 하교 후에는 전화통화를 하면서 도와주었다.

그렇게 약 2~3주 동안 준비했고, 혹시 나의 부정확한 발음으로 하는 발표를 청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에 대비하여 배포할 대본도 작성해 두었다. 마침내 발표당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었지만 발표시간에 미리 준비했던 PPT를 학교 컴퓨터에 저장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당황해서 머릿속이 하얘졌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다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무사히 끝냈다. 기뻤다. 무엇보다도 기뻤던 것은 대본을 보지 않고 내 발표를 완전히 이해하신 분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또한 발표공포증이 심했던 내가 처음으로 그것을 이겨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 이후로 2학년이 되어 해보고 싶었지만 두려움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던 모의UN에 참가하여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아직도 발표할 때면 긴장을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로 발표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극복하게 되었고,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수천 번 넘게 고친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자기소개서를 처음 쓸 땐 정말 막막했지만 고등학교를 입학을 하고나서 여러 활동에 참여하면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자기소개서를 적다보니, 그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내가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장할 수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대학에 가고 사회에 나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 답이 법에 있을 거란 생각에 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를 따지지 않고 법학을 배울 수 있는 곳에다가 지원을 했고, 자기소개서와 면접 반영비율이 높은 학교부터 찾았다. 숙명여자대학교도 역시 반영비율이 높았기에 지원을 했다. 약 2년 동안 준비했던 자기소개서를 계속해서 수정을 한 후 제출했다. 지원했던 학교는 모두 1차 합격을 했었다. 기쁨은 잠시 면접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계속 연습하고 공부도 하고 준비를 하였다. 면접날 실수를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관들의 웃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 결과 지원했던 곳 중 절반은 최종합격을 하였다.

대학교를 고르는 것은 정말로 어려웠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부모님하고 상의하여 지금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을 하고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3개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기쁜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다. 거기다가 머나먼 타향살이 생활에 때론 지치기도 했다. 그래도 동기를 비롯한 대필 도우미 선배님들, 조교님, 교수님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셨고 수업을 들을 때 청각장애를 위한 수업지원이 정말 잘 되어있어서 고등학교 다녔을 때 보다 별 어려움이 없어서 무사히 한 학기를 끝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서울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보고 싶었던 뮤지컬도 보고 축구장가서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도 있었다. 또한 통통기자단도 하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고등학생의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법조인이 되어서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더 많은 경험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 방법도 배우고 법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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