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둘러寶記(보기)

Home > 간행물 > 웹진 '통' > 이전호보기 > 둘러寶記(보기)
게시글 상세보기
장애인이기에 누리는 아름다운 삶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첨부파일

장애인이기에 누리는 아름다운 삶

강대유(통통기자단)
 누군가가 예술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아름다움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은 다르겠지만 그 안에 아름다움이 없다면, 예술이라는 장르가 지금껏 존재했을 까 싶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어 공연장, 전시회장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지금껏 피아니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다른 얘기 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장애인이기에 느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피아니스트로서 장애가 있기에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삶에 대해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장애는 삶 속에서 예술적 원천이자 영감이 된다. 그리고 장애가 있기에 갖게 되는 예술적 특별함이 있다. 청각장애가 있지만 불후의 명곡을 남긴 베토벤, 정신질환을 겪으면서도 주옥같은 곡을 남긴 슈만, 정신질환 속에서도 세기의 명화를 남긴 반 고흐 등을 보면 그렇다. 그들의 삶 속에 장애가 있었기에 뛰어난 곡과 명화를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한 고난과 아픔이 있었기에 특별한 예술성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그렇다. 장애는 불편하고 불쌍한 것이 아닌 예술로 표현하고 연결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장애 예술은 비장애인 예술보다 더 독특하고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애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장애예술가들이 얼마나 하겠어?’, ‘뭐 저 정도면 장애 있는 것 치고 잘하네.’, ‘장애가 있는데 저렇게 연주 할 수 있단 말이야?’식의 말들을 한다.
 사회는 아직도 장애예술인의 창조적 아름다움보다 그들의 불편함을 먼저 본다. 뛰어난 연주를 하는 장애예술인을 봐도 예술의 뛰어난 평가보다 그들이 가진 장애가 큰 이슈화 된다. 그래서 전에는 장애예술가라는 단어를 보며 왜 굳이 장애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하나? 불만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특별한 예술성이 비장애인과 구분되고 다른 시각으로 더 자유롭게 표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장애가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점으로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에 대해 말해보겠다. 음악치료사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비장애인 음악치료사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장애를 겪으며 생기는 제한점이나, 어려움들과 낙담, 의기소침과 같은 감정들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어떻게 내담자를 이해할 수 있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이해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불행한 것이 아닌 장애예술가로서, 장애인 음악치료사로서의 삶을 아름답게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해주었다.
 이제는 장애예술인, 장애인 직업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태도가 달라졌으면 한다. 장애예술가의 예술적 창조성이 동정이 아닌 그들의 특별한 예술성으로 표현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 직업인으로서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 역시 존중되어야만 한다.
 나는 그렇게 나의 삶에서 장애예술가와 장애인 음악치료사로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어서 그 누구보다 행복함을 느낀다. 나를 포함한 모든 장애인들이 그러한 아름다운 삶을 누리고 만들어나가기를 희망해본다.
다음글 올림픽만큼 패럴림픽에도 관심 가지자
이전글 장애인 취업의 사각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