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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대구로 가야합니다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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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대구로 가야합니다

박관찬(통통기자단, p306kc@naver.com)
  한번은 취재를 위해 수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동대구로 돌아오는 ktx를 타기 위해 수원역으로 왔다. 역으로 들어서면서 모바일 코레일톡으로 예매해두었던 표를 활동지원사에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기차를 타야하는 곳이 몇 번 승강장인지 저시력인 내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활동지원사가 대신 확인하고 앞장서자 내가 뒤따라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 곳에 마침 기차가 정차해 있었다. 활동지원사가 그 기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나도 뒤따랐다. 예매한 좌석으로 걸어가면서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의 내부가 ktx의 그것과는 달랐던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예매한 좌석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사람에게 우리의 표를 보여주자 그 사람도 본인의 표를 보여주었는데, 그때서야 우리가 기차를 잘못 탔다는 걸 알았다.
  기차에서 내리기 위해 뒤돌아서 걷는데, 활동지원사의 걸음이 너무 느린 느낌이다. 기차가 출발해버릴지도 모르니까 급한 상황인데도 말이다. 문에 다다른 후 활동지원사가 먼저 내린 다음 나도 따라 내리려는 그 순간, 기차의 문이 닫혀버렸다. 순발력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 타이밍에서는 닫히는 문틈 사이로 내리기가 불가능했다. 잘못 탄 기차에서 나만 내리지 못한 것이다. 문이 완벽히 닫히면서 동시에 내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덜컥 내려앉는 듯했던 그때의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활동지원사가 이어폰을 끼고 걸어가느라 우리가 타야 되는 기차가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거나, 동대구로 가는 ktx인지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실수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보다, ‘기차를 잘못 탔다’는 사실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좌우간 시각과 청각에 장애가 있는 나의 활동을 지원해줘야 하는 사람과 다른 기차를 타게 되었고, 내가 탄 기차는 (내가 전혀 가본 적 없는) 전라도로 가는 것이었다. 스스로 전라도가 아닌 동대구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카톡으로 활동지원사와 어떻게 할지 상의하고 있는데 마침 승무원이 내가 서 있는 곳을 지나가고 있어서 황급히 붙잡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 내게 어떤 장애가 있고 기차를 잘못 타게 된 상황을 설명하고 하실 말씀을 내 손에 ‘글’로 좀 적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승무원은 계속 내게 ‘말’만 한다. 승무원이 두 번 세 번 계속 말할 때마다 청각장애가 있다고 재차 말했는데, 그럼에도 계속 말로 하는 걸 보면 아마 목소리를 더 크게 냈던 것 같다. 세 번째로 말한 다음에서야 글로 전달하려고 하는데, 내 손에 적어주는 대신 들고 있던 종이에 펜으로 적는다. 그것도 아주 작은 종이라서 글씨도 그만큼 작다. 그래서 난 승무원이 내게 하고자 하는 말을 글로 다 적기도 전에 시각장애가 있어서 그런 작은 글씨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실 말씀을 손에 적어달라고 다시 말했는데, 이번에는 휴대폰을 꺼낸다.
  그때 내가 기차에서 내리지 못했던 순간부터 지켜보고 계셨던 입석의 한 신사분이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승무원이 나에게 하려는 말을 내 손에 또박또박 글로 적어서 ‘통역’을 해주셨다. 그 신사분 덕분에 천안에서 내린 후 동대구로 가는 기차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마침 대전이 목적지였던 신사분은 천안에서 같이 내렸고, 동대구로 가는 기차도 같이 탄 후 대전에서 먼저 내리셨다. 두 번째로 탄 기차에서 신사분이 승무원에게 내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목적지가 어딘지 신사분이 상세히 설명하면서 무사히 내릴 수 있게 신신당부를 하셨다. 너무 감사했다. 명함이라도 받아둬야 했는데, 그럴 생각을 못했을 만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차를 타고 내릴 때 장애로 인한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도우미와 승무원들도 장애에 대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보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시각장애인과 리프트가 필요한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에 대한 쪽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단순히 청각장애만 가진 분은 시력을 활용해 혼자 기차를 이용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필자처럼 시각과 청각 두 가지 장애를 가질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상황을 대비해 장애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청각장애인과 대화할 때, 청각장애인이 어떤 의사소통 방법을 선호하는지를 파악한 다음 대화를 시도하는 에티켓이라도 충분히 이해하는 교육이 활성화되길 소망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잘못 탔던 기차에서 만난 신사분처럼 아직 우리 사회에 장애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장애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가능한 방법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신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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