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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특별한 서울시민 도전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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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특별한 서울시민 도전

박관찬(통통기자단, p306kc@naver.com)

 

  인간은 살아가면서 꿈을 꾸고 도전을 합니다. 그것이 어떤 꿈이고, 어떤 도전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꿈을 꾸고 도전할 가치와 권리가 있으니까요. 하물며,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더 나아가 지구에 존재하는 인간 중에 당연히 포함되는 장애인도 꿈을 꾸고 도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요? 특히 단순히 한 가지의 장애유형도 아니고,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자기의 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장애인도 말입니다. 더구나 이 ‘시청각장애’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15가지의 장애유형 중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어찌보면 파란만장하고 또 어찌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던 삶을 달려온 경상도의 한 청년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을 친구같은 아빠, 절대로 누구도 따라 못할 것 같은 요리 솜씨를 지닌 엄마, 예쁨과 귀여움이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것 같은 두가지를 멋지게 소유하고 있는 동생, 대한민국에서 장애학생에 대한 복지와 지원이 최고로 잘 되어 있는 곳이라고 자부하는 학교, 허물없이 기댈 수 있는 친구들, 그리고 인생의 은사님이신 스승님... 든든한 사람들이 지켜주는 사랑의 울타리에서 애지중지 안전하게 살아가던 그 청년이 2019년 불쑥 서울로 왔습니다. 청년이 가진 꿈을 펼치기 위해, 그리고 청년이 하고자 하는 것을 도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같은 대한민국 영토라고 해도, 경상도와 서울은 너무 다릅니다. 우선 지하철만 해도 대구는 1~3호선이지만, 서울은 9호선이 있는가 하면 공항철도, 분당선 등 숫자로만 지하철의 호선을 기억하던 청년에겐 생소한 이름이 더러 있습니다. 지하철이 많다보니 환승하는 개찰구를 찾는 것부터 지금 오고 있는 지하철이 일반행인지 급행인지 구분하고, 하차해야 하는 역까지 정거장 수를 정확히 세어보며 기억하는 것까지 엄청난 에너지와 집중이 필요합니다. 청년이 바로 시청각장애인이기 때문이죠. 청년이 좋아하는 순대국밥을 잘 하는 식당이 어디에 있고, 청년의 집에서 그 순대국밥집까지 가는 길은 어떻게 되는지, 틈틈이 혼자 가서 글을 쓰고 여유를 즐길 만큼 조용한 카페는 어디에 있는지, 또 그 카페는 어떻게 가는지... 누구에게는 아무렇지 않고 어쩌면 ‘꿈’이나 ‘도전’이라고 칭하기에 너무 소소하고 보잘것없는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제대로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장애’를 가진 청년은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꿈을 꾸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고로케 빵을 사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파리 바게뜨로 가는 데에는 집에서 10분도 걸리지 않지만, 마주오는 행인과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고 걸어가는 동안 장애물이 없는지 유심히 보고 지나는 자동차를 주의하다보면 10분은 훌쩍 넘기기 마련입니다.

  다른 청년들이 그렇듯이 외모에도 많은 관심을 두는 청년은, 요즘 ‘서울살이’에서 단골 미용실을 찾기 바쁩니다. 경상도에 있을 때 오랫동안 다녔던 단골 미용실 원장님은, 청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어느 고객과 다름없이 멋지게 머리를 디자인해주었습니다. 다만 청년이 가진 시청각장애로 인해 청년의 손바닥에 하고싶은 말을 적어주고, 앞에 있는 거울에 비친 청년의 모습을 청년이 잘 보지 못할까봐 작은 거울을 따로 청년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가서 보여주는 등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소통을 했습니다. 머리를 잘해주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고객과 소통을 통해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열린 마인드’도 필요하겠죠? 그런 미용실을 찾고, 또 거기까지 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청년에게는 하나의 꿈이자 도전입니다.

  하루 일과 중에서 청년이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은 마음과 영혼을 담아 첼로를 켜는 때입니다. 청년은 서울에서 첼로를 통해 아직 아무도 해낸 적 없는 위대한 꿈에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단순히 첼로를 연주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어울림 예술단’의 단원으로서 단원들과 함께 앙상블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소통이 쉽지 않은 발달장애인과, 악보를 보기 어렵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시청각장애인의 앙상블, 불가능한 미션으로 보일 수 있지만 청년은 도전할 것입니다.
  누가 못한다고 말하면 그것을 할 수 있게 만들면 되고, 누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그것을 가능하도록 만들면 되니까요. 아주 평범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청년의 ‘서울살이’,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가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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