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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 을 심어주신 나의 피아노 선생님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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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 을 심어주신 나의 피아노 선생님

통통기자단 강대유(piano-you@hanmail.net)

 

‘최고급 선생은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의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평화운동가인 노먼 커즌스(Norman Cousins)가 말한 명언이다. 이 명언을 들으면 생각나는 분이 계신다. 내가 고등학교 때인 17살에 만나 3년 동안 피아노를 가르쳐 주신 나의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시다. 그리고 25년이 넘게 만나지 못했지만 아직도 그 스승님의 가르침과 경험들은 나의 기억과 마음 한 켠을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그분의 가르침은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뛰어난 외모를 갖고 계셨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실력이나 가르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에 더하여 넓은 마음을 갖고 계셨고 제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피아노를 치도록 격려하고 지지해주셨다. 선생님의 그러한 가르침은 장애를 가진 나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나는 ‘클리펠 파일 증후군’ (Klippel-Feil syndrome)이라는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여러 개의 목뼈가 유합되어 5살 때 수술을 했고 목을 자유롭게 돌리는 것과 팔을 위로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깨의 양쪽 위치가 어긋나 있고 비장애인보다 어깨가 많이 올라가 있다. 이러한 신체조건을 가졌지만 피아노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중학교 때 피아노를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전주예술고등학교를 지원해서 당당히 합격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나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들어간 학교였는데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들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던 나와는 달리 많은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대학교수님들에게 레슨을 받아왔고, 레슨비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던 나와는 달리 아이들의 삶은 풍족해 보였다. 또한 입학 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거의 2달을 레슨 선생님 없이 피아노를 쳐야 했다. 그런데 당시 한 달에 40만원이라는 레슨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나의 상황을 아시고 소액의 레슨비만 받고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흔쾌히 자처하신 분이 계셨다. 내가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말이다. 그분이 바로 나의 피아노 선생님이신 ‘궁지연’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을 만나면서 내 피아노 인생은 새로워졌고, 적응해야 할 부면도 많아졌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만남은 나의 피아노 인생에서 잊지 못할 기억들을 갖게 해주었다.

선생님의 장애맞춤형 가르침
선생님의 가르침은 나에게 특별했다. 지금까지 배워왔던 모든 피아노 테크닉 주법을 바꿔야만 할 정도로 말이다.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는 어깨와 팔의 릴렉스가 중요한데, 어깨와 목에 장애가 있던 나는 릴렉스를 구사하기 힘든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당시 피아노 선생님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고, 미국에서 배워 오신 ‘타우브만 피아노 주법’1) 20세기 후반부터 다수의 피아니스트와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쳐오고 있는 도로시 타우브만 테크닉(Dorothy Taubman Technique)은 소위 ‘건강한’ 테크닉으로 알려져 있다.
으로 레슨을 진행하셨다. 다행인 것은 이 주법이 피아노를 편하게 치는 것에 주안점을 둔 것이었고, 장애가 있던 나에게 꼭 필요한 주법이었다. 아마 그 시절에 이 주법을 배워 오신 분은 나의 선생님밖에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선생님은 이렇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술적인 부분 뿐 아니라 나에게 부족한 자신감을 갖도록 레슨해 주셨다. 아주 작은 부분이 좋아져도 큰 칭찬을 해주셨고, ‘앞으로도 더 잘 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씀하시면서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다. ‘타우브만 주법’이 당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큰 몫을 했지만 선생님의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은 그때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 20세기 후반부터 다수의 피아니스트와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쳐오고 있는 도로시 타우브만 테크닉(Dorothy Taubman Technique)은
  소위 ‘건강한’ 테크닉으로 알려져 있다.


음악인이 넘어야 할 관문, 피아노 콩쿠르
선생님과 레슨 한지 1년쯤 됐을 때 콩쿠르를 나가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음악 콩쿠르는 학교 선배들을 비롯해 전국각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다는 학생들이 참가하는 실력 있는 음악 콩쿠르였다. 내심 걱정이 되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음악적 경험을 위해 참가해 보기로 결정했다. 학교에서 나의 이미지는 장애가 있지만 피아노를 좋아해서 열심히 치는 학생 이였다. 동기들도 심지어 ‘너는 어깨에 힘을 못 풀어서 피아노 치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피아노에 대한 나의 능력을 판단하고 단정 짓기도 했다. 의기소침해져서 ‘그런 내가 무슨 콩쿠르야?’라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지만 선생님은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며 무조건 나가보라고 설득하셨다. 처음으로 나간 ‘전주대학교 음악 콩쿠르’에는 7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고 예선에서 6명만을 뽑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무사히 예선을 치루고 나는 6명만을 뽑는 예선에 통과했다. 나의 피아노 능력을 무시하고 단정 지었던 동기 몇 명은 안타깝게도 예선에서 떨어졌다. 당일 날 진행되었던 본선을 무사히 치루고 난 ‘장려상’이라는 첫 번째 상을 수여받게 되었다. 이 상은 나에게는 ‘대상’과도 같은 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해 준 상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피아노 잘 치던 모 선배도 예선에서 떨어졌는데 상을 받아왔다면서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
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거봐. 열심히 하니깐 됐잖아.’라고 말씀하면서 장애가 아닌 나의 실력만을 평가하셨다. 학교에서 장애가 아닌 피아노의 능력으로 바라보아주신 유일한 분은 나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이후에도 난 2번이나 대학 콩쿠르에서 입상을 했고 피아노 대회에서 ‘전체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 모든 결과는 선생님이 심어주신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때 진심으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피아노를 잘 칠 수 있게 가르쳐주는 능력보다 ‘학생으로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한 믿음은 내가 마음을 열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게, 그리고 내 자신을 믿을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장애가 있고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피아노를 배울 수 있을까? 잘 칠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힘들어 할 때 나의 선생님은 그러한 불안한 생각들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그 믿음을 처음으로 갖도록 이끌고 지지해 주신 분이 바로 나의 피아노 선생님이시다.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고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도 많은 힘과 자양분이 되고 있다.

스승의 힘이 나에게 끼친 영향
나의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점들을 열거하자면 이렇다. ‘타우브만 주법’을 통해 장애에 맞는 맞춤형 가르침을 베풀어 주신 것, 믿음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것, 마음을 여는 것, 누군가를 믿고 따르는 것,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 제자를 포기하지 않는 것, 이득과 보상을 바라지 않으며 선을 베푸는 것, 어려운 제자들을 돕는 것 등이다. 선생님이 나에게 베풀어 준 가르침은 단지 피아노 기술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면서 알고 행해야 하는 일들을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알려주셨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나의 선생님처럼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만들어주는 선생님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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