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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2002년 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바다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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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2002년 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바다

박민영(통통 기자단,skylove9601@naver.com)

 

  2002년 여름에는 뭐했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2002년에는 월드컵 응원하러 거리에 나갔죠.’ 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다들 월드컵에 대한 가슴 벅찬 추억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누군가의 부모님, 누군가의 아내는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던 북한 경비정 2척이 한국 측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계속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국 해군 고속정 4척이 즉시 습격에 대비하여 경계했다. 동시에 물러날 것을 경고하는 방송을 실시하면서 대비태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기척 없이 북한 측이 선제 기습 포격을 가했고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이때부터 양측 사이에 교전이 시작되고, 곧바로 인근 해역에 있던 해군 고속정들이 교전에 합류하였다. 이어 10시 43분경 북한 경비정 1척에서 화염이 발생하자 나머지 1척과 함께 퇴각하기 시작해, 10시 50분경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상함으로써 교전은 25분 만에 끝이 났다. 제2연평해전으로 한국 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하였으며, 19명이 부상하였다. 해군 참수리고속정 1척이 침몰하였다. 처음에는 이를 서해교전이라고 했다가 ‘제2연평해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날이 월드컵대회 마지막 날 하루 앞둔 날, 2002년 6월 29일이었다. 누군가는 월드컵을 즐겼고, 누군가는 치열하게 한국을 필사적으로 지켜내려고 했었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슬퍼하며 대성통곡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이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같은 민족끼리 싸워서는 안 된다. 6.25 전쟁 이후로도 다시 이런 일이 없길 바랐는데 무고한 희생자가 생겼다. 이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 측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행위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이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할 북한은 양측 간의 외교는 정상화되었지만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북한은 언젠가 해전 전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 후 13년 만에 이 해전을 배경으로 제작된 ‘연평해전’이 상영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게 참 안타깝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정부에서 작년에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시행하였다. 더 나아가서 전사자 중 한 분이신 한상국 상사는 중사로 진급하였고, 그의 이름을 딴 한상국함이 진수되었다. 그래도 정부를 비롯한 사람들이 점차 조금씩 제2연평해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진심으로 기쁘다.

  마지막으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한다. ‘호국’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키며, ‘보훈’은 공훈에 답한다는 의미이다. 즉 제2연평해전 전사자뿐만 아니라 이 거룩한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바친 분들에게 감사드리는 달이다. 더더욱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 국가유공자상징을 새롭게 만들었고 국가유공자 명패를 달아드렸다고 한다. 평소에는 여유가 없어 감사드리지 못했다면 이 글을 읽고 나서 잠시라도 감사를 드려보는 것이 좋겠다. 혹은 이웃집에 국가유공자 명패가 달려 있다면 직접 감사인사를 드려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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