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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의 질문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입장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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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의 질문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입장

정현석(통통기자단,dreamgmp@hanmail.net)

 

친척들의 질문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입장 이미지

  "다친 다리는 좀 어떠니? 빨리 나아서 뭐라도 해야 할 텐데 요즘 멀쩡한 사람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드니까 너도 정말 쉽지 않겠다. 요새는 장애인 채용도 많이 있다니까 알아봐도 되고, 아니면 장애인 시설도 좋은 곳 많다고 하더라.”

  무릎 뼈가 부러져 보조기를 차고 재활을 하고 있던 해의 추석이었다. 아버님이 8남매 중 맏이셨기에 명절을 맞아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간단한 술자리로 연결되었을 때, 누군가가 나에 대한 걱정을 하며 취업 애기를 꺼냈다. 아무리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해도 한 사람이 먼저 말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말하기는 쉬워지는 법. 순식간에 대여섯 번의 비슷한 말을 들었고 유사한 질문도 받았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신 듯 보였지만 순간 난감해하는 부모님의 표정, 나의 답변을 기다리는 친척들 그리고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조용해진 집안 공기를 낯설어하며 얼굴을 내민 사촌 동생들까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러 가지 이야기로 시끄럽던 집안에는 텔레비전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저기 그 문제는 말이야”

  그렇게 부모님이 뭔가를 대신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적어도 내가 직접 나서서 입장을 정리하고 계획을 밝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나와 친지들의 나이 차이가 몇십 년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우선은 듣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나의 일을 더군다나 취업에 관한 일을 대신 말하게 할 수는 없었다.

  “우선 몸 상태를 봐야 재택근무가 되었던 밖에서 일을 하던 결정이 되겠지요? 일반기업의 채용도 물론 알아볼 거지만 다리 상태를 무시할 수 없으니 상황에 따라 재택근무나 일자리센터도 어떤 일자리가 있는지 봐야겠죠... 그리고 일반기업이 힘들면 자회사형 표준사업장도 살펴볼 겁니다.”

  장애인들에게도 명절은 세대 간 갈등의 연속,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응 능력은 장애와 무관.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취업과 결혼 출산 등에 대해 청년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방송이나 인터넷에 나온 지는 상당히 오래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장애 청년들은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과 취업 시장의 움직임에 있어 기성세대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며, 때로는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친척들 대부분이 장애인 당사자와 2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지금 5,60대인 분들이 3,40대를 살아갈 때 우리 사회는 몸이 불편한 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하기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이 존재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몸이 불편한 학생이 대학교에 원서를 접수하러 가면, “우리 학교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으니 그건 감수해야 한다.”는 말을 당연한 듯 말하는 담당자가 있었고, 장애인이 아닌 ‘장애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했던 시기였다. 이동권이나 직업을 찾을 때도 제도 자체가 미비한 것은 마찬가지여서 현재 장애인 이동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담당하는 장애인 콜택시는 2003년에야 서울에서 시작되었고,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의 경우에도 2008년 처음으로 제도가 도입되었다.

  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몸이 불편한 사람은 시설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오랜 관습처럼 굳어진 것 일수 있으나 우리는 몸이 장애가 있을 뿐, 현 상황을 설명하거나 큰 틀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진 사람들이다. 또한 나로 인해 부모님이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워서 희망이 없는 사람’ 으로 보이는 것이 싫었다.

  그 이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친척들의 질문과 나의 답변, 그리고 부모님의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주민 센터에서 진행하는 장애인 행정도우미나 공공근로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처음 듣는 분들이 많았던 것이다. 참고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장애인 의무고용 사업주가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회사를 설립한 경우 자회사가 고용한 장애인 근로자를 모회사가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여 장애인 의무 고용률에 포함시키고 정부에서 정한 의무 고용률만큼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았을 때 납부해야 하는 부담금을 감면해주는 제도이다. 그 시간들을 통해서 나는 장애인이 아닌 내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준비하는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를 친척들에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자칫 어두워질 수 있었던 명절 분위기가 다시 환해진 것은 물론이다.

  친척들의 질문에 명절이 두려운 쳥년들이여, 내 인생은 내가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자. 그래서 자신에게도 내 말을 듣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장애가 있지만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살아가는 나를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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