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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가장 가까운 악기, 첼로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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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가장 가까운 악기, 첼로

박관찬(통통기자단, p306kc@naver.com)

 

심장에 가장 가까운 악기, 첼로 이미지 1

  영화 ‘굿바이’의 남자 주인공 ‘다이고’는 전직 첼리스트였지만 전문 납관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체를 만지는 것조차도 두려워했지만, 사장님이 정성스러운 손길로 고인을 배웅하는 모습을 보며 점차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이고’의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왜 하필 그런 일을 하냐면서, ‘다이고’의 손이 불결하다고 하며 하나둘 그를 떠나갑니다. 그래도 열심히 일했던 ‘다이고’지만, 직업에 대한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인식 차이에서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다이고’는 첼로를 연주하며 마음과 영혼을 달랬습니다.

  필자는 우연히 ‘굿바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첼로를 연주하는 ‘다이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 첼로가 어떤 소리가 나는지는 전혀 듣지 못했지만, 괴롭고 힘들 때마다 첼로를 연주하는 그 표정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느꼈습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악기 중에서 첼로가 연주자의 심장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굿바이’를 보며 첼로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청각장애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도 가지고 있어 악보를 보기도 어렵고 첼로의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장애유형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시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며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려움과 괴로움을 ‘다이고’처럼 첼로를 연주하며 조금이라도 달래고 싶었던 것입니다.

  준비된 제자에게는 스승이 나타난다고 하지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좋은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가장 선호하는 의사소통 방법이 ‘손바닥 필담’인데, 첼로를 배울 때는 이 방법으로 소통이 쉽지 않습니다. 저의 왼손은 첼로의 지판에 음정을 짚어야 하고, 오른손은 활을 잡고 있으니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을 제 손바닥에 적어주려고 할 때마다 동작을 멈추고 다시 자세를 잡는 패턴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시간이 걸리게 되겠지요.

심장에 가장 가까운 악기, 첼로 이미지 2


  그래서 선생님은 하고 싶은 말, 가르쳐주고 싶은 내용을 저의 손바닥이 아닌 손등, 팔, 어깨 등 여기저기에 글로 써주셨습니다. 레슨을 하며 저에게 하고 싶고 해주고 싶은 말이 엄청 많을 텐데, 그것들을 ‘말’이 아닌 오직 ‘글’로만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어쩌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늘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전에 약속했던 레슨시간인 1시간을 지금까지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습니다. 항상 1시간 반이나 2시간이 기본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에게서 배우는데, 어떻게 열심히 배우지 않을 수 있을까요?

  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첼로 지판의 음정을 구분하기 쉽지 않고, 첼로의 다른 줄을 건드리지 않고 활을 긋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너무 행복했습니다. 활로 첼로를 그을 때 나는 그 진동에 의존하면서, 저의 가슴에 안고 있는 첼로를 통해 심장으로 전달되어오는 전율에 얼마나 기쁘고 가슴이 벅차올랐는지 모릅니다.
  현재는 첼로 선생님이 단장으로 있는 ‘어울림 예술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울림예술단은 제가 입단하기 이전까지 발달장애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단어 그대로 어떤 장애유형이든, 장애·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나 함께 ‘어울리는’ 곳입니다. 올해 5월 1일, 처음으로 단원들과 협연을 했습니다. 연주 일정이 확정된 순간부터 무대에 오르기 직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얼마나 긴장되고 가슴이 떨렸는지 모릅니다. 첼로를 연주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행복했는데, 누군가와 함께 협연을 한다는 것은 저조차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기에 걱정과 불안이 엄청났었지요.

  다른 단원들은 협연 중 누군가 박자를 이탈하면 기다려주며 컨트롤 할 수 있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 스스로가 박자를 잘 맞춰야 합니다. 첫 협연곡이 ‘문 리버(Moon River)’였는데, 잔잔하고 느린 곡입니다. 그런데 협연을 하는 그때는 왜 그렇게 빠르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울림예술단은 무사히 해냈고, 단장님 표현으로 그 협연은 ‘인류 역사상 발달장애인과 시청각장애인의 최초의 협연’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첼로를 배우며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못하는 것은 할 수 있게 하면 되고, 불가능한 것은 가능하게 하면 된다.”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못할 거라고,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방법을 찾고 도전하고 시도한다면 분명히 해낼 수 있습니다. 약간 떨림이 있지만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저의 첼로 연주를 통해 많은 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심장에 가장 가까운 악기, 첼로 이미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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