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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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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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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다신은미(통통기자단)
아무런 꿈도, 목표도 없어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던 시간이 있었다. 남들보다 3년 정도 늦게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됐지만 꿈이 있고 공부에 대한 열망 때문에 입학한 건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받게 되는 ‘졸업장’과 ‘학위’때문이었고, 이것들을 받으면 나를 덜 무시하지 않을까하는 어리석은 믿음과 나도 조금이나마 세상 앞에 당당해지지 않을까하는 일종의 잘못된 기대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학생활에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한 채 무료하고 허무하게 시간을 죽이고만 있었다.
어느 날 치료와 서비스 등을 이용하기 위해 자주 오가던 복지관에서 방송사 모니터요원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와는 무관하다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넘겼다. 하지만 한 번 도전해보라는 복지관 사회복지사의 조언에 아무것도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그래도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어 지원을 하였다. 방송사 모니터요원의 지원 절차는 이력서와 모니터 보고서를 작성해 보내는 것이었다. 모니터 보고서는 방송사에서 지정한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을 하게 되어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텔레비전을 볼 때 어느 누가 모니터하듯 본단 말인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여 지원은 하였지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렇게 모니터요원이 되었다. 처음으로 근로계약서도 작성해보고, 오리엔테이션도 들으니 기분이 들뜨고 감회가 남달랐다. 그동안 내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당황스러움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모니터요원으로서 내게 주어진 첫 업무는 보도프로그램 모니터링 업무였는데, 모니터링 업무도 처음인데다 보도에 대한 내용이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눈앞이 깜깜했다. 지금 그 당시 썼던 보고서들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을 보고서라고 썼을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점점 하다 보니 이 일이 재밌어져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보고서에 쓴 지적사항이 다음 방송에서 개선된 것을 볼 때 왠지 모를 뿌듯함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편으로는 내가 쓴 보고서 한 장의 위력을 확인한 뒤 책임감 또한 가지게 되었다. 드디어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열심히 임하게 되고 잘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계약이 종료된 후 모니터라는 직업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 싶어 상암동에 있는 방송아카데미의 방송모니터링 과정을 수강하게 되었다. 모니터 과정을 수강하며 그 어떤 공부를 할 때보다 재미를 느끼는 내 자신에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에게 맞는 일을 찾은 것에 그동안 뭘 했던 거지라는 생각과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에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한 걸음 씩 내딛으면 되는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몇 달 후, 기대하지 않았는데 방송사 측에서 재계약을 요청했다. 10개월간 추가로 업무를 하였고, 이후 다른 방송사 모니터요원에 응시해서 1년간 모니터요원을 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모니터 일, 이 일로 인해 나의 적성을 찾게 되었고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일은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나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설사 찾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에게 오는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으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언젠가 내 진로를 찾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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