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흐린 날, 바람 부는 날... 알 수 없는 날씨처럼 나는 32년을 살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파란만장했지만 그 시간 덕분에 수많은 인연을 만났고 좋은 추억과 경험을 쌓아가는 기회가 되었다고 자부하기에 나는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지 않고 있다.
아직 사회에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 굴하지 않고 하루를 1년처럼 살고 있다. 나의 직업은 다양하다. ‘3R 커뮤니티 재택근무(사원)’, ‘경기장애인인권포럼(장애인 정책 모니액터)’, ‘가온장애인자립생활센터(활동가)’ 등 근무 장소에 따라 나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하루 24시간 돌아가는 나의 일상과 직무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한다.
나의 일상은 보통 사람들처럼 일찍 시작된다. 아침 8시 30분이 되면 굿모닝 알람 소리와 함께 컴퓨터가 켜진다. 컴퓨터를 켜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출근 체크이다. 이렇게 집에 있는 컴퓨터가 로그인을 하면서부터 내가 있는 공간은 집이 아닌 사무실로 탈바꿈한다. 집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6개월이 되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나의 주 업무는 퇴직자 명단 작성과 일용근로자의 근무일수를 계산하여 필터링 작업을 해주는 것이다. 내가 고용된 회사는 중소기업 업체로 채용대행 업무를 위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근무자가 대부분 일용직이기 때문에 이동변수도 많고 잦은 변화가 발생한다. 그것을 기록해 주는 것이 나의 업무인 것이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집에서 일하게 되어 편하겠다.’, ‘오~ 부러워~’라고. 하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갑자기 일이 생기거나 하면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고, 일이 없을 때에도 근무시간을 지키기 위해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한다. 활동적인 성격을 지닌 내게 이것은 가장 큰 문제로 와 닿았었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 생활에 익숙해지고 이제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재택근무는 장단점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 장점은 출, 퇴근이 없어 나같이 장애를 가진 사람이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과 식비, 교통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돈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반면 단점으로는 나의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사람과 교감할 수 없어 혼자만의 시간이 많다는 점이 있다.
재택근무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본인이 강인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재택근무는 참 좋은 직업이라 말해 주고 싶다.
내가 하는 두 번째 일은 장애인 정책 모니액터(moniactor)이다. 모니터링(Monitoring)과 액터(Actor)의 혼합어로서 장애인 정책에 대한 감시뿐 아니라 당사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주 업무는 지방의회 의정/환류 모니터링 경기도와 31개 지자체 지방의회의 의회 회의록을 바탕으로 장애인 정책과 관련된 발언을 수집하여 시·도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하고, 1년 전 행정부가 긍정적으로 답변한 발언들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또는 지방의회 조례 모니터링으로 경기도와 31개 지자체 지방의회의 장애인 관련 제, 개정 조례안을 수집하여 우수조례를 발굴하고 장애인 차별 요소가 발생하는지 함께 검토하는 일이다.
이 일은 2월부터 교육을 시작하여 9월까지 하는 한시적인 업무이다. 대부분 재택근무로 이루어지며 한 달의 한번 정기모임을 통해 비장애인을 포함한 5인의 정책모니액터가 수집한 발언들을 함께 나누고 있다. 나는 현재 이 일을 하면서 정책모니터링을 통해 우리사회에 비춰지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많이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세 번째 하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로, 주 2회 오후 파트타임으로 가온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것이다. 이곳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 가는 공간으로, 현재 내가 하는 일 중 컴퓨터 세상이 아닌 사람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여기서 나의 주 업무는 장애인들의 문화 활동과 스포츠 활동을 잘할 수 있게 뒷받침 하는 역할이다. 문화 활동으로는 야외활동, 영화 관람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기고 있으며 스포츠 활동으로는 뇌성마비 특별 종목인 보치아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다모아’자조모임은 보치아 경기에서 준우승을 거듭은 바도 있다. 보치아(boccia)는 장애인 스포츠 중의 하나이다. 선수들이 공을 경기장 안으로 굴리거나 발로 차서 보내 표적구에 가장 가까이 던진 공에 대하여 1점이 주어진다. 개인전은 4엔드 경기로 치러진다. 공을 던질 때는 코치의 도움을 받아 마우스 스틱이나 홈통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장애인들이 모여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 현재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이것저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나도 가온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장애인들에겐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가온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보며 나는 항상 이들처럼 열심히 노력하여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타인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미로 속 길을 찾아가듯 나 스스로 인생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