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둘러寶記(보기)

Home > 간행물 > 웹진 '통' > 이전호보기 > 둘러寶記(보기)
게시글 상세보기
경복궁 별빛야행을 가다
작성자 mgsoft
첨부파일

경복궁 별빛야행을 가다

최하늘(통통기자단)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등 우리의 궁궐은 조선 왕실을 대표하는 중요한 유적들이어서 그런지 더욱 나들이가기 좋은 장소이다. 고궁이 주는 정취와 여유로움을 느끼다보면 어느새 여기가 21세기인지 조선시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깊은 역사를 가진 고궁이기에 고궁이 가진 이야기들을 들으며 고궁을 즐기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고궁 야간개장은 고궁이 주는 그 고즈넉한 정취를 더욱 즐길 수 있기에 찾는 이가 많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인 필자는 야간에 고궁을 돌아다니며 해설을 들을 수 없었기에 아쉬운 점이 많았었다.

노을이 멋들어진 경복궁의 모습

노을이 멋들어진 경복궁의 모습

어느 해 여름보다 무더웠던 올 8월의 어느 날,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에서 지체‧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복궁 나이트 투어 ‘독립여행’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약 2시간 정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야간의 경복궁을 거닐며 600년의 역사를 지닌 경복궁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던 이 행사는 한복카페 ‘행궁낭자’에서 한복을 협찬해 주었고, ‘AUD협동조합’에서 청각장애인 문자통역 서비스를 지원해주었으며, ‘밝히는 고래’에서 관광통역해설을 해주었다. 청각장애인 참가자인 필자도 문자통역을 통해 소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모든 궁에 들어가게 되면 다리가 보이죠? 이런 다리가 무조건 배치되어 있어요. 그 아래로는 물이 흘러들어요. 지금은 말라서 안 흐르지만 외부에서 들어올 때 혹시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런 마음을 정결하게 하라고 이 다리를 건너라고 합니다. 그리고 경복궁의 다리 난간을 보면 재미있는 동물들이 있어요....(중략)”
경복궁 내부 탐방을 하는 동안 관광통역해설사가 경복궁에 대한 역사 및 유래를 들려주면 쉐어타이핑 속기사가 열심히 문자통역을 해주었다. 청각장애인에게 문자통역을 지원해주고 있는 협동조합인 AUD도 이와 같은 야외문자통역(이동문자통역)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속기사가 속기자판을목에 걸고 핸드폰 거치대를 달은 후 이동하면서 관광통역해설사의 말을 타이핑하여 관광통역해설사가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전달 할 수 있게 지원하는 방식으로 통역이 진행되었다. 우리는 이 문자통역 내용을 스마트폰의 쉐어타이핑 어플을 통해 볼 수 있었고, 청각장애인도 고궁해설을 보면서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거닐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필자는 이 행사 전까지는 경복궁을 가면 눈으로만 즐겼었다. 문화관광해설사를 통해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행사 참여를 통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달밤 경치를 보면서 근정전, 경희루, 자경전, 앙부일구 등 역사의 유래를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나면 해설사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눈이 피곤해지거나 내용이 지루해지면 고개를 돌려 주변 경치를 보느라 내용을 제대로 못 챙기는 경우가 많았고, 사람들이 많으면 해설사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 먼발치에서 겨우 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점점 빠르게 개선되어가고 있어, 나의 권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는 사회로 변해가는 이 상황이 매우 반갑다.

‘독립여행’의 행사를 통해서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들도 고운 한복을 입고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며 경복궁 나들이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행사가 일회적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계속되었으면 한다. 밝고 따뜻한 빛을 비추는 달빛처럼 우리사회도 다양성에 더 많은 빛을 비추는 바람이 불 것 이라고 희망한다.

노을이 멋들어진 경복궁의 모습

 

다음글 시키는 대신 하게 할 것, 강요하는 대신 필요하게 할 것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을 꿈꾸며(1)
이전글 무더운 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