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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아름답지만...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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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아름답지만...

 


전동성(자유기고가, 전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동일본 대지진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여준 일본돕기운동은 가히 민족을 초월한 지구촌 가족돕기라는 숭고한 줄서기자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행동이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구처럼 과거를 잊은 한국인들의 상조정신이 발현한 것이다. 언론의 힘이 그걸 뒷받침했고 일본열도를 감격하게 만들었다고 보도기관들이 전하기가 무섭게 일본은 독도문제를 중학교과서에 “자기 영토”라고 게재하면서 문제는 시끄러워 졌지만...

나눔이란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실천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한 개의 숟가락에서 시작된다. 일본돕기의 훈풍 속에서 생각나는 것이 하나 떠오른다. 우리 장애우들에 대한 배려도 그랬으면 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날에만 일과성처럼 벌어지는 행사가 아니라 일년 3백65일이 배려되는 그런 상조의 분위기가 아쉽게 느껴진다.

장애아들을 둔 아버지가 자녀의 장애수당을 더 받게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공원의 나무에 목을 매어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자식사랑은 정상인이나 장애인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유독 장애인에 대한 감정은 유별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장애인 배려의 시작은 “장애우들을 정상인처럼”이라는 슬로건에서 그 힘을 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장애인들은 왜 그다지 가난하고 소외되어 있나 하는 질문을 한다면 참 어리석다고 나무라겠지만, 성탄절이면 거리에 등장하는 자선남비처럼 한해 내내 거리에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도우미 남비’는 없을까? 이번 일본돕기에서도 등장했는데...

헬렌 켈러는 귀가 먹고 앞을 못보는 다중장애인이였다. 그런 그녀가 후에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회가 그녀를 위한 배려에 힘이 되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열정을 가진 선생님이 있었고 본인 스스로 장애를 이겨내겠다는 간절히 소망이 잘 배합된 것이었다.


출처 : 신영복 엽서

 

 



<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마음이 담긴 나눔이 최고 >

 


나눔은 아름답다. 그리고 성서에서 “오른 손이 한 일은 왼손 모르게” 하라는 말씀처럼 이웃을 돕는 것은 연민나 동정심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나눔이 되어야 비로소 제 값을 한다는 생각이다.

장애인은 약자 가운데서도 가장 약자에 속한다. 약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권리장전이 불문율처럼 존재하지만, 약지에 대한 배려는 역시 스쳐 지나가는 들러리용이기 십상이다. 약자를 돕는 것은 강자의 시혜가 되어서도 과시가 되어서도 안된다.

일본의 경우 고교생 등이 이웃돕기를 한다며 모금함을 설치했으나 일부 지역에선 빗나간 이웃들이 그 모금함을 강탈하거나 훔쳐가는 사례도 있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우리도 장애인 모금함을 상설했을 때 어느 이웃이 “나도 장애인”이라며 그 모금함을 털어갈 수도 있다. 그는 장애인이 아닌 그 보다 못한 인간이기를 부정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눔은 숭고한 것이다. 어느 방송사가 상설 장애인 모금함을 마련해 놓고 아름다운 사연 등도 알려준다면 좋은 프로가 될 수 있겠다는 혼자의 생각이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배가 고픈 사회이다. 내빵을 나누기엔 내가 먼저 고프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약자 편에 서는 것을 좋아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 약자를 빙자해 제 배를 채우려는 ‘사이비 약자’들도 경계해야 하리라.

“나눔이 있는 곳에 축복을. 가난한 자에게 나눔을”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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