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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맞춤복지’는 없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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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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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맞춤복지’는 없는가? ![]() #1. 어떤 장례식-고 강영우 박사 시각장애인이면서 한국계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 차관보 직급까지 올랐던 강영우(68) 박사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1944년 경기도 문호리에서 태어난 강 박사는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듬해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시력을 잃었으며, 같은 해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 10대 가장으로 불우한 청소년기를 겪었지만 연세대를 졸업한 뒤 1972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으로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됐으며, 2001년에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 발탁됐다. 당시 강 박사 직급은 미국 이민 100년 한인 역사상 최고위직이었다. 강 박사는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과, 소아마비를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루스벨트 재단 고문도 지냈다. 강 박사는 작년 10월 췌장암이 발견돼 투병을 시작했고, 생의 마지막을 앞둔 지난해 12월 16일,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실명으로 인해 열심히 공부해서 세상 방방곡곡을 다니며 수많은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여러분들 덕분에 제 삶이 사랑으로 충만했고 은혜로웠다."고 전한 뒤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온 제가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받아 감사하다"며 삶을 정리하기도 했다.그의 별세 후 공개된 편지에는 '사랑하는 아내에게'라고 남긴 편지에서 "당신은 나의 지팡이가 돼서 나보다 항상 한 발짝씩 앞서 걸어줬다"며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에 감사함과 미안함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고 전했다. 그의 자서전 '빛은 내 가슴에'는 7개 국어로 번역 출간되어, 국회 도서관에 음성도서로 소장돼 있을 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고인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선물은 '나눔'이었다. 지난달 초 그는 두 아들과 함께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에 25만 달러(약 2억 9000만원)를, 장애인 정책 연구를 위해 설립한 '리처드 손버그 재단'에 1만 달러를 각각 쾌척하기도 했다. (언론보도 재구성) #2. 어떤 사설 사법(司法) 사상 첫 시각장애인 판사가 탄생했다. 서울 북부지법에서 일하게 될 1급 시각장애인 최영(32·사법연수원 41기)씨가 주인공이다. 대학생 때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상실한 최씨가 판사로 임명되기까지 걸어온 길은 경탄을 자아낸다. 우리에게 불굴의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걸 증명하는 훌륭한 본보기인 것이다. 최씨는 후천적 실명이란 절망적 상황에 부닥치고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섯 번의 도전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생 1030명 중 상위 40위권에 든 우수한 성적으로 연수원을 수료했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청각에 의존하며 연수원의 모든 과정을 마친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의 ‘인간 승리’는 역사는 그래도 진보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에겐 희망을 주고,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중략> 최씨의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지원이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장애를 딛고 일어서서 큰 성취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정부와 사회공동체는 장애 미등록자까지 합치면 500여만 명에 달하는 장애인에게 불편을 주는 여러 가지 환경을 개선하는 데 더욱 열성적이어야 한다. 최씨에게 음성전환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됐듯 장애인을 위한 여러 보조기기들을 개발해 지원하는 일, 장애인을 위한 각종 입법을 마련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중앙일보사설 2012.0218) #3. 힘내라 공부해라 그리고 강해져라. “안 된다” “못 한다” “할 수 없다” 한 마디로 불가능이라는 말일게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저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숙명처럼 된 것이 장애인들의 삶이다. 지체장애인들에겐 현실의 벽이 사방을 가로막고 어디로 가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국가가 보장한 ‘이동의 권리’조차 마음대로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갖가지 규제(?)가 그들을 옭아매고 있다. 심신장애 등 자폐를 앓는 장애인들은 마음의 벽이 그들을 옭아매고 어둠 속으로 내몬다. 특히 자폐증을 앓는 어린이들은 ‘정신장애’로 손가락질 받기 일쑤이고 심지어는 괴물(?)보듯 한다. 게다가 농.맹 장애인들이 지하철이나 보도를 걷노라면 길을 방해하는 거리의 장해물 정도로 취급받기 일쑤이다. 모든 게 가로막힌 ‘불가능의 세계’일 뿐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때아닌 ‘복지’가 선거이슈로 등장해 여야당 모두 걸신들린 듯 무한정의 장밋빛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고함 소리에 가려진 장애인들의 비명은 들리지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복지는 백화점에 나열된 상품이 아니다. 그것도 쇼윈도에 전시되어 구경이나 하자는 것도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 있는 복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지정책 가운데 혹시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것이 없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수많은 ‘복지구호’ 가운데 ‘맞춤복지’라는 말이 나돈다. 그것은 대상이 정해지고 그 대상에 알맞은 부축의 정책이 된다면 제대로 된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장애보험’조차 제대로 찾아가서 부축하는 ‘맞춤’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는 이야기이다. 위에 예로 든 고 강영우 박사나 최 판사의 경우는 그 사회가 키워낸, 그 사회가 길러낸 ‘맞춤복지’의 예라 하겠다. 강박사는 미국이라는 ‘나눔사회’의 힘을, 그리고 최판사는 법조라는 ‘부축사회’의 덕을 크게 본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그런 사회의 덕을 보려면 먼저 장애인들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움을 받으려면 먼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스스로의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면 지나친 요구라고 나무라진 않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는 말처럼 선명하게 다가오는 말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권한다. “힘내라, 노력해라. 그리고 강해져라. 장애인들이여!” 역경은 뚫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편이라는 것을 믿기를 바란다. 전동성(자유기고가. 전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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