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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친화적 기업이 장애인을 대하는 자세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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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친화적 기업이 장애인을 대하는 자세
문 영민 (한국수력원자력 수력처)
 
대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을 외면하고 부담하는 고용분담금이 1000억원을 넘어선다는 기사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LG와 삼성그룹 등 대기업이 중증장애인을 대거 채용한다는 기사가 신문 1면에 올라왔다. 특히 LG그룹은 지금까지 대기업의 장애인 채용을 사무보조나 콜센터 등의 영역에 국한했던 것과 달리 현장기술직과 연구직 등 다양한 부문에서 채용하기로 해 관심을 끌고 있다. 장애인 취업박람회를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채용이 사무보조 분야로 제한되어 있어 자연과학을 전공한 내가 지원할 곳이 없어 황망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의무고용을 위해 장애인 일자리의 절대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대량만큼 일자리의 성격도 중요한 것이기에 대기업이 다양한 직군의 장애인을 채용한다는 소식이 아주 반갑다. 최근 ‘전략적 사회공헌’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에 따라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고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의 시행으로 장애인 생산품 구매 할당을 채워야 한다. 또 사회봉사 시간을 채우는 것이 회사 내부평가 항목에 포함된다. 전략적이든, 고용부담금을 피하기 위해서든, 내부평가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서든 이제 ‘장애 친화적인 회사’가 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러한 ‘장애 친화적’인 기업에서 근무 중인 장애인 직원이다. 내가 소속된 회사도 중증장애인 생산품을 구매하며, 주말에는 따로 시간을 내어 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시간을 채워야 한다. 나 역시 회사 개인평가를 위해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마흔 시간 가량의 봉사활동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얼마 전, 회사 건강검진이 있었다. 검사를 위해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해야 했기 때문에 검사가 끝난 후에 회사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주었다. 그런데 빵을 나누어주는 책상 앞에 다음과 같은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리 회사는 중증장애인 생산품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나누어드리는 빵은 중증장애인 생산품으로 품질이 떨어질 수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단팥빵 한 조각을 만드는데 얼마나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기에 중증장애인이 만든 빵이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 제출하는 보고서에는 이런 문구를 명시해야 할까? “본 보고서는 중증장애인이 작성한 것으로 질이 떨어질 수 있으나 양해 부탁드립니다.”
 
기업들은 점점 ‘장애 친화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장애인이 호의의 대상일 경우로 국한된다. 장애인이 호의의 대상일 때 ‘장애 친화적’인 기업은 기꺼이 주말에 시간을 내서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를 하고, ‘품질이 떨어지는’ 중증장애인 생산품도 자비롭게 구매한다. 그러나 장애인이 평가를 받는 경쟁의 일원이 될 때는 더 이상 자비롭지 않다. 현실은 냉혹하다. 얼마 전 “업무 능력이 떨어지고 조직에 해를 끼친” 직원으로 평가받아 직위해제 된지 보름 만에 한 장애인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만일 그 장애인이 사무실에서 휠체어를 밀어달라고 했다면 정상적인 도덕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흔쾌히 그를 도왔을 것이다.
 
그가 실제로 업무 능력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그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내가 건강검진 후 먹은 빵의 경우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빵은 아주 맛있었다.) 다만 그에 대한 ‘업무 평가’에 장애라는 요소가 상당부분 개입되어 있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재빠르게 커피를 타거나 복사를 할 수 없고, 발전소 설비 안에 들어가 점검을 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효율성이 중시되는 회사 내에서 특정 업무를 수행할 때 동일 기준을 들이댄다면 장애인은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동일한 평가 잣대로 장애인이 부당하게 평가받는 일을 막기 위해 기업에 바라는 것은 막대한 사회공헌비용이나 장기적 플랜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증장애인들이 생산한 빵을 대하는, 나아가 느리고 제약이 있는 장애인의 몸을 대하는 여유와 감수성 같은 작은 실천이다.
 
안타까운 일은 여유와 감수성은 고사하고, 장애인을 호의의 대상으로 여기는 기업조차 한국 사회에서 그리 많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초반에 언급한 고용부담금을 대기업을 포함한 기업 전체로 확대하면 그 총액수가 2,144억에 달한다고 한다. 2011년 중앙행정기관의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율은 법적 기준인 1%에 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냉혹한 경쟁 시장에서 내쳐지며, 호의의 대상이 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장애인이, 맨몸뚱이로 넘어서야 할 기업의 벽은 아직도 높아 보인다.
 
*기고가 소개 :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으로, 학부에서 화학을 대학원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현재 전공을 살려 공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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