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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주차장 사수기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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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주차장 사수기
문 영민 (한국수력원자력 수력처)
 
올림픽대로가 아주 막히던 어느 저녁, 퇴근을 하고 집 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보니 장애인 주차장에 흰색 소나타가 주차되어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지상과 지하에 모두 주차장이 있지만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통로는 계단인 까닭에, 나는 지상 주차장에만 주차가 가능하다. 그리고 열 개 남짓한 지상 주차장에 장애인 주차구역은 딱 한 곳 뿐이다. 그동안 경비 아저씨의 부지런한 단속 덕에 불편 없이 주차를 할 수 있었지만, 마침 일주일간 경비 아저씨가 부재중이시란다. 혹시나 하고 차에서 내려 확인을 했더니 흰색 소나타는 역시나 장애인 표지가 없는 차다. 전화를 했더니 곧 차를 빼준다.
 
다음 날 저녁, 장애인 주차장에 또 다른 차가 세워져있다. 역시 장애인주차가능 표지는 없다. 전화를 걸어서 차를 빼달라고 하니 금방 내려온다고 한다. 15분을 기다려도 차주인이 내려오지 않아 다시 전화를 했더니 “식사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자리가 없어 15분째 기다리고 있다고 점잖게 따져물었더니 “아가씨, 우리가 식사 중이라니까!” 화를 내고는 전화기를 꺼버린다. 그 다음날에는 또 다른 차가 세워져있었고 차를 빼러 내려온 아주머니는 “내가 평소에는 장애인시설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그러는 사람이에요”...
 
경비 아저씨의 단속이 없던 일주일 내내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장애인 주차장에는 어김없이 장애인 표지가 없는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주차되어 있는 차가 매일 달라졌던 것을 보니 한 개인에게 양심을 지켜달라, 장애인을 배려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사실 장애인 주차장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양심과 배려심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제27조 3항은 “장애인자동차표지를 부착하지 아니하거나 장애인자동차표지가 부착된 자동차로서 보행에 장애가 있는 자가 탑승하지 아니한 자동차를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주차한 자는 2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신이 주말마다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 원칙의 문제라는 말이다.
 
일전에 해외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장애인 기관을 인터뷰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방문할 기관 앞에 버스를 주차할 공간이 없어 도로에 차를 세우고 하차를 하려고 했더니 득달같이 교통경찰이 달려와 주정차 위반으로 딱지를 끊는다고 했다. 버스 기사님은 계속해서 “장애인이 타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했지만 교통경찰은 “원칙은 원칙이다”라며 주정차가 가능한 구역으로 버스를 옮기라고 지시했다. 방문기관과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하고 한참을 걸어오며 연수 참가자들과 교통경찰의 융통성 없음에 불평했지만, 적절하고 안정적인 장애인 지원 인프라와 더불어 원칙을 공정하게 적용하려는 시민의식에 내심 감탄했다. 
그러나 ‘벌금’이 아닌 ‘과태료’를 물게 되는 행정질서 위반이라 사실상 강제력이 크지 않다. 작년 5월 4일 민주당 최규식 의원이 장애인 주차표지가 없는 차가 장애인 주차구역에 세워진 경우 증거사진을 제출하면 신고 포상금을 주는 ‘주차 파파라치 제도’를 포함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였으나 임시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너도 나도 ‘원칙’을 이야기하지만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정작 드문, 원칙이라는 말이 더할 나위 없이 가볍게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문제는 여전히 원칙에 호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간이 넓고 입구와 가까운 장애인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것은 일반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것보다 편한 일이다. 그렇지만 휠체어를 꺼내고 싣기 위해 주차장에 넉넉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나에게, 장애인 주차장의 자리 하나는 얼마나 편한가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주차를 할 수 있고 없고가 달려 있는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된다. 그러한 ‘가능’의 문제에 우선적으로 접근해 장애인 주차가능 표지가 없고 보행이 불편한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차는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할 수 없다’는 원칙이 법률의 형태로 만들어졌고, 주차를 할 권리와 주차를 하지 않을 의무가 나누어졌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얼마 전 신호위반으로 단속을 당했다. 교통경찰은 내 차 번호를 적다가 장애인 표지를 확인하고는 “장애인이시네요. 오늘은 그냥 가세요.”라며 단속하지 않고 나를 보내주었다. 원칙에 어긋난 ‘배려’를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원칙이 살아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작은 원칙도 무겁게 지켜지는 분위기가 만연할 때, ‘부조리한 미덕’을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있을 것 같다.
 
* 참고로, 장애인 주차구역 안내판에 단속기관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지 않은 경우 스마트폰 ‘생활불편신고’ 어플의 ‘불법 주정차 신고’를 이용할 수 있다. 불법 주차된 사진을 찍어 신고를 하면 관할구역 행정기관에 등록이 된다.
 
 
얼마 전 한 인기 아이돌 그룹의 차가 휴게소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되어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논란이 되었다. 이 그룹은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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