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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자유를 허하라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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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자유를 허하라
문 영민 (saojungym@hanmail.net) 
한국사회의 ‘놀거리’ 부족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대학생들 사이의 유흥문화, 월드컵 거리응원문화 등의 이유를 우리 사회의 ‘놀거리 부족’에서 찾는 시각들도 있다. 친구와 만나 ‘밥먹기-커피마시기-영화보기’를 ‘커피마시기-영화보기-밥먹기’, ‘영화보기-밥먹기-커피마시기’로 매번 순서만 바꾸어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놀거리’의 선택지는 장애인들에게 더욱 더 좁아진다. 장애인이 문화예술활동을 즐길만한 인프라는 아직도 부족하고, 등산이나 여행 같은 여가생활도 힘든 일이다. 장애인 체육시설이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스포츠 활동을 맘편하게 ‘여가’로 즐기는 것도 아직까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학창시절 ‘취미’란은 늘 독서와 책읽기였다. 취미란에 배드민턴 같은 운동이나 바이올린 연주 등을 적어내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몸을 쓰지 않는 얌전한 활동만이 휠체어를 탄 내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야 수영이나 배드민턴 등 휠체어를 타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운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래 앉아있어 요통이 심한 나에게 수영을 적극 추천했으나 주위에 장애인 수영 레일이 있는 수영장은 전부 멀리 떨어져있어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회사 입사 후 회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장애인 수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작년부터 드디어 수영을 시작했다. 시간이 무한하게 많았던 대학교 시절엔 머뭇거렸지만, 저녁밥을 포기하고 퇴근 후 시간을 쪼개가며 수영을 배우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리가 수영장 바닥에 닿지 않아 혼자 수심이 깊은 레일로 흘러가 죽을 뻔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여전히 수영강습이 있는 날은 일주일 중 가장 즐거운 날이다. 운동신경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 1년이 지난 지금 겨우 평영으로 레일을 왕복할 수 있는 정도이지만.
 
오래 앉아있어 허리가 아프고, 어깨 근육이 뭉쳐 두통이 심했는데 정기적으로 수영을 하면서부터 몸이 훨씬 나아졌다. 수영을 배우면서 얻은 것은 무엇보다 ‘자신감’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머리를 쓰는 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지만 몸을 사용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 기쁘다. 휠체어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기만 하는 내 다리도 수영장 안에서는 물살을 가르고 나아간다. 수영장 내에서 수영복을 입고 다리를 드러내는 것에 스스럼없어진 것을 보니, 내 몸에 대한 부끄러움도 조금 사라진 것 같다.
 
최근에는 수영 말고 더 다이나믹한 운동에 도전해보고 싶었다(수영도 충분히 다이나믹할 수 있지만, 아직 내 수영실력은 다이나믹하지 않다). 장애인 스키나, 스킨스쿠버와 관련된 기사를 보고 기회가 있으면 꼭 배워보리라 다짐만 하고 있다가, 지난 달 장애인 스키학교에 참가했다. 하이원 리조트에서 개설된 장애인 스키학교에서는 휠체어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좌식스키를 대여할 수 있었고, 함께 간 청각장애인 친구들이 불편함 없을 정도로 수화가 가능한 선생님들이 계셨다. 안전을 위해 선생님이 스키를 잡아준 상태에서 코스를 내려왔지만, 스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이나믹한 스포츠였다. 올해는 개설기간이 짧아 아쉬웠지만 이제 매년 겨울 스키장을 찾고 싶다. 겨울은 눈이 오고 추워 늘 빨리 지나가줬으면 하던 계절이었는데 이제 겨울을 기대할만한 ‘취미’가 새로 생긴 것이다.
 
물론 내가 스포츠를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우연히 장애인 수영장과 회사가 가까웠기 때문이고, 운전을 해 맘만 먹으면 언제든 강원도 정선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중증장애인 친구는 운동을 배우고 싶지만 지방 여건이 좋지 않아 여가생활은 잠으로 채워지곤 한다고 했다. 실제로 전국 장애인 체육시설은 서울 지역에만 33%가 집중되어 있고, 광역자체단체는 한 두 개의 장애인 체육시설만을 운영하는 등 장애인 스포츠 시설의 지역 편중화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청주시가 160억 원을 투자해 장애인스포츠센터를 설립한다는 반가운 기사를 읽었다. ‘센터’를 집중으로 한 엘리트 장애인스포츠선수를 양성하는 것 만큼, 모든 스포츠센터에 장애인 시설을 의무화하여 모든 지역의 장애인의 스포츠활동 접근 장벽을 허무는 것도 필수적이다.
 
장애인에게 스포츠는 생활의 여유로움을 즐기게 하고 심리적 안정을 주는 여가 활동과, 엘리트 스포츠 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직업활동을 경험하기 힘든 중증의 지적장애인 등은 스포츠 자체가 ‘일상 활동’ 그 자체로 중요할 수 있다. 타인의 도움 없이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삶의 중요한 영역으로서의 스포츠. 아직까지 나는 그 영역이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 날이 풀리면 수상스키를 배우러 가야지. 수영을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스킨스쿠버에도 도전하고 싶다. 내가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스포츠 분야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휠체어 장애인이 즐길 수 있는 좌식 스키]
좌식스키에 앉아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아웃트리거를 양팔에 단단히 매고 코스를 내려간다.
넘어져서 스키를 탄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훈련되면 혼자 코스를 내려갈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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