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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자가운전권과 직업재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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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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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자가운전권과 직업재활 지방출장을 다녀왔다. 4박5일 동안 각각 무주, 예천, 안동, 진주, 밀양에 있는 다섯 개의 지방사업소를 방문하는 왕복 1,600km의 대장정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여자 혼자 낯선 지방에서 식당과 숙소를 찾아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고, 지방사업소 특성상 건물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하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이동을 할 때마다 불가피하게 도움을 받는 일도 편하지 않았지만, 큰 사고 없이 다녀왔다. 이번 출장은 회사에 입사한 후 해낸 일 중 가장 뿌듯한 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굳은 의지와 탁월한 사교성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대장정을 함께한 자동차와 운전능력이 없었다면, 시내에서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굽이진 산길을 들어가야 하는 지방사업소 중 단 한 곳을 방문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운전은 하게 된지 이제 만 5년이 되어간다. 지금은 자동차가 휠체어만큼이나 내 삶에 기여도가 큰 보조기구가 되어가지만, 운전면허를 딸 당시에는 부담스러운 비용, 교육시설과 인력의 부족, 주위 사람들의 우려 등으로 이렇게까지 힘들게 운전면허를 딸 필요가 있을까 포기하고 싶었다. 차량구입과 개조에 드는 비용은 다행히 개인후원자분의 도움으로 충당할 수 있었지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무료 운전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 집에서 먼 국립재활원과 송파구청 두 곳 뿐인데다 예약을 해도 3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집에서 가까운 운전전문학원에 다행히 장애인 교육용 차량이 구비되어 있었지만, 장애인차량 교육이 가능한 강사분의 일정이 끝날 때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고, 유료교육비를 부담해야 했다. 어렵사리 운전면허를 딴 후에도 주행 중 장애인 사고율이 비장애인에 비해 2배가 높아 위험하다는 근거없는(?) 통계를 들먹이는 사람을 몇 명이나 만났다*. 나는 양발을 사용할 수 없어 손으로 가속페달과 브레이크페달을 밟을 수 있도록 돕는 핸드컨트롤러만이 필요하지만, 뇌병변장애?근육위축 등의 장애로 양손의 사용이 어려운 장애인의 운전을 위해서는 훨씬 더 복잡한 운전보조기기가 필요하다. 이들에겐 터치에 의해 동작이 되는 조이스틱이나 고감도 핸드컨트롤러 장치(sensitized steering)가 필요한데, 국내에서 제작?설치되고 있는 운전보조장치는 핸드컨트롤러, 좌측 가속페달, 핸들선회 장치 등 일부에 불과해 중증장애인의 운전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이런 보조장치들이 부착된 차량을 수입하자면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 보통의 장애인들은 엄두를 내기조차 힘들다. 고감도 운전보조장치의 국내 개발이 미진한 이유 중 하나는 중증장애인이 운전면허를 따기가 어려워 수요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전문학원에 장애인 교육용 자동차를 1대 이상 확보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으나 대부분 핸드컨트롤러가 달린 자동변속기 차량만을 구비하고 있어 다양한 유형의 중증장애인이 운전교육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대표적 장애인 운전교육 전문기관인 국립재활원 역시 조이스틱이나 고감도 핸드컨트롤러 등의 특수 운전보조장치를 거의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에 혼자 옮겨앉기 힘든 장애인을 위한 탑승·적재 보조장치까지 고려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 지역마다 장애인운전재활센터를 두어 중증장애인의 운전능력을 개별로 파악해 적절한 교육을 지원하고 차량개조에 필요한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경우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차량구입과 개조를 위한 비용을 지원하며,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직장을 다니는데 필요한 특수운전기기(탑승?적재장치 포함)의 설치와 개조 비용은 물론 운전 훈련비까지 지원되고 있다. 이는 운전능력습득이 장애인의 직업재활, 나아가 자립생활, 사회참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활동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이동에 관한 권리는 저상버스 숫자를 늘리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등 대중교통에의 접근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자가운전’권에 대한 논의는 보조공학계에 한정되어왔다. 그러나 장애인이 운전을 배우고 도로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장애인이 직업을 선택하고 직장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이다. 현재 장애인 차량에 한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감면하고, 승용차에 대한 특별소비세를 면제하는 등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중증장애인이 ‘자가운전’의 핸들을 잡기까지의 제도적, 보조공학적인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 ![]() <독일의 운전지원센터와 구비차량> 참고 윤소식(2004), 지체장애인 운전면허제도 종합개선대책. 지체장애인 운전면허제도 개선관련 공청회 자료집.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오길승(2011), 신체적 중증장애인의 자가운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시스템 분석 및 장애인 운전 지원 정책 연구.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 완전히 근거없는 통계는 아니다. 윤소식(2004)은 장애인 운전자의 교통사고율(1.65%)이 비장애인의 사고율(1.08%)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고 주장했으나, 주행거리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 모집단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아 통계학적 의미가 없다는 점 등의 반론이 제기되었다. ** 2011년 기준으로 1종 수동변속기가 장착된 장애인 교육용 차량은 국내에 8대(장내기능용 4대, 도로주행용 4대) 뿐이다(오길승,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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