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똑바로寶記(보기)

Home > 간행물 > 웹진 '통' > 이전호보기 > 똑바로寶記(보기)
게시글 상세보기
장애인 인권상- 안과 밖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첨부파일
 
 
장애인 인권상- 안과 밖
 
 
전동성 (자유기고가. 전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유엔의 일침
지난 9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대한민국 국가보고관인 몬티안 분탄(Monthian Buntan, 태국)은 심사과정에서 "한국은 장애인 관련 제 법률을 제정하는 등 많은 성과를 달성했지만 신안 염전사건을 비롯한 장애인 인권 침해 상황이 있었다"며 "특히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입원 및 심각한 인권 침해, 장애인 보험가입을 제한하고 있는 상법 732조, 장애인의 모바일과 웹 접근성 등에서 여전히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또 다른 위원들은 시외저상버스 도입률, 여성장애인에 대한 강제불임시술 실태, 장애인의 고용 확보 및 소득보장, 장애등급제 문제, 장애학생 통합교육 문제, 건축물 편의시설 실태, 학대 및 노동력 착취의 대책 문제, 장애인 차별금지법의 실효성 확보, 재난 등 위험상황에서의 대책, 성년후견제, 시설 수용 장애인의 인권문제 및 지역사회 정착 문제, 한국 수어법 제정 문제, 투표권 제한 문제 등을 지적했다고 한다(뉴시스 보도).
 
#장애인 인권상의 계절...
1998년 한국적인 장애인인권헌장이 제정되고 그 이듬해부터 시행된 인권상은 어느덧 16년이 되었다. 하지만 유관단체들의 성과급처럼 진열된 이름 그대로의 전시행정의 틀을 보는 것은 아니었는지…. OECD라는 선진국들의 경제놀이터에 발을 들여 놓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갈수록 ‘경제불균형’의 골은 깊어지는 것 같아, 소외와 무관심의 벽이 두터워진다는 느낌도 안타깝다.

이미지는 국위선양 되었지만 불균형의 격차, 장애우들의 ‘빈익빈 대열’이 삶의 가파름에 허덕거리는 모습이 과연 국민소득 3만 불의 자화상이 되질 않길 바라지만….
 
#나눔과 돌봄 없는 사회상
국회 국정감사처럼 “장애인복지를 위해 많은 예산을 썼다면 그 성과는 무엇?”이냐고 따져 묻는 의원들의 수준이 결국 ‘돈’이야기에 지나지 않고 정부는 열심히 이리저리 썼다며 부산스레 돈의 공적을 나열하는 등 정치권이 과연 현장에 대한 애정이 얼마인지 궁금하기만 하지만, 한번이라도 현장의 일꾼들에게 애정 어린 감사말씀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하는 의심증도 역시 커진다. 국회는 입법만 하는 곳이고 집행을 감사하는 곳이며 정부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 정치인들의 권리이자 의무란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면….
 
“바닥을 모르는 것들이 정치를 합네 하는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서” 이민을 하려해도 장애인은 갈 곳도 없고, 아니 받아준다는 곳도 없다. 대한민국 사람이니 영원히 이 땅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숙명이다.

기업인도 마찬가지이다. 나눔을 한답시고 장애인 지원금을 노린 일부 기업인들은 이때다 싶어 보조금을 노려 장애인을 아주 싼 값에 고용한다. 그리고 버젓이 최저임금제의 최저임금을 주면서 열심히 인권을 들먹거린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들을 우리가 월급주고 일자리를 도와주고 있다고 으스대면서. 게다가 국민들의 장애인 인식은 나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일부의 의식은 ‘석기시대의 야만적 얼굴’이 남아있음은 무얼 탓해야 할지 참….
 
#그래도 희망은 있다?
사회사업이 마치 ‘일확천금의 노다지’인양 떠벌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마술처럼 우후죽순 수많은 사회복지학과가 대학마다 개설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었고 인구고령화를 기화로 보건복지 분야가 각광을 받으면서 더더욱 위세(?)를 얻었지만 현실은 척박한 환경과 재정확보의 어려움으로 사회복지요원은 장애인이나 고령층과 마찬가지로 열악한 지위와 대접을 받는 직종으로 하락하고 만 것이다. 누구의 잘못일까?

그들은 사회복지교단의 신도들이 아니다. 신앙 때문에 희생과 봉사만을 강요받기엔 사회복지요원들의 노력과 공부가 너무나 아깝다. 하지만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헌신이 그들을 더욱 비참한 생활로 몰고 가는 것이 더욱 비참할 뿐이다. 어쩌면 사회복지를 통해 상을 받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것이다. 난 오히려 이 번 만큼은 장애인 복지향상을 위해 그늘에서 애쓰는 이름 없는 그들에게 단체상을 만들어 시상했으면 한다. 단 한번이라도 그게 가능하다면…. 왜냐하면 그들 덕분에 그 어두움에 빛의 고마움이 더 밝은 것이기 때문이다. 상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더욱 그들을 위한 상도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싶다.

이번 시상의 의의대로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사회적 차별을 제거하고, 불의에 대항해 온 분들에게 수여되는 장애인인권상이야말로 소외계층의 대변자이자 이 시대 의인에게 주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글 최근 장애인고용 이슈와 정책방안
이전글 장애문화예술인으로의 성장을 위한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