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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로트렉과 김기창과 쿠사마 야요이를 위하여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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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로트렉과 김기창과 쿠사마 야요이를 위하여
 
 
김서연(Art Director)
 
저는 왼손잡이입니다 
한글을 미리 깨치지 않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던 저는 알 수 없게 생긴 도형들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면 “나비”, “친구”, “학교”처럼 아는 단어가 되어 소리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신기해 국어시간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입학하고 한참이 지나서도 저 혼자만 글씨를 거울로 비추듯 반대 방향으로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선천적으로 왼손잡이로 태어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도형과 글씨를 반대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지만, 정작 본인은 어디가 틀렸는지 잘 알지 못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선생님이 불러 주시는 단어들을 열심히 “그려”서 내는 제가 왜 항상 빵점을 받는 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께서는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틀리고 틀려도 야단을 치거나 문제 삼지 않은 채, 한 달 이상을 지켜만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학부모 상담 시간에 찾아오신 어머니께 한글이야 학교 다니면서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자연스레 깨우치게 될 텐데 몇 달쯤 빨리 한글을 알게 만드느라 지니고 태어난 특별함을 망가뜨리는 것은 옳지 않다며, 본인이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방법을 찾는 사이 혹시 받아쓰기 백 점 받는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며 마음 다치지 않도록 부모님이 잘 보살펴 주시면 아이가 즐겁게 글을 이해하도록 가르치겠노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래서 저는 왼손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며 자랐습니다.
 
장애보다는 작가로써 불려 지길  
생각해 보면 장애를 가진 작가가 예술계에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이란 따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각각의 작가들이 타고난 본래의 모습으로 그들만의 색을 찾고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최적의 지원책이 뭘까 함께 생각해 보는 마음들이 필요할 뿐입니다. “작가”보다 “장애”가 앞서 불리어 지지 않도록, 작가는 그저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인정받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먼저가 되도록 말입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 중 한 사람인 화가 로트렉(Toulouse Lautrec)은 화려한 물랑루즈의 밤과 살아 움직이는 듯 역동적인 무희들을 묘사한 작품들로 오늘 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지만 그에게 장애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 그다지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선천적인 재능이건 본인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건, 남 달리 발이 빠른 사람이 뛰어난 달리기 선수가 되고 정확한 음감과 아름다운 발성을 지닌 사람이 사랑 받는 가수가 되는 것이 이상할 리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림 출처: Toulouse Lautrec. Enrica Crispino 저, artedossier 발간.
 
물론 당시에 장애를 가진 그가 작가로 활동하며 사는 것이 지금보다 쉬웠을 리 없지만 그의 재능을 편견 없이 인정하고 아꼈던 주변 친구들의 애정과, 장애로 얻은 상처를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그의 의지가 그를 지금까지 훌륭한 작가로 기억되게 하는 밑거름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지금 어딘가에 살고 있을 로트렉과 김기창(청각장애를 지닌 한국의 화가로, 근대와 현대미술의 교량 역할을 함)과 쿠사마 야요이(일본의 설치미술가로, 어렸을 적 환각과 정신이상을 겪음)의 재능이 묻혀 사라지지 않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며 허물없는 친구가 되어 후대에 오래 회자될 작가의 탄생에 일조해 봄이 어떨까요.

※ 본 기사는 6월에 발간되는 『웹진 통(通)』 제51호 ‘똑바로 보기’ 코너에 시리즈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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