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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 영화로 만나는 장애인 가족 이야기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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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 영화로 만나는 장애인 가족 이야기

박준범(YTN 라디오 PD)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맞춰 영화 한 편이 개봉했습니다. 당초 이 영화는 4월 13일에 개봉하기로 했었는데, 장애인 단체와 청소년폭력예방단체 등의 요구로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로 개봉 날짜를 변경했다고 합니다. 바로 <지렁이>라는 영화인데요, 윤학렬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김정균과 오예설이 주연을 맡은 영화 <지렁이>는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는 원술(김정균 분)의 유일한 희망인 딸 자야(오예설 분)에게 닥친 불행을 파헤쳐 가는 아버지의 복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외동딸 자야와 아빠 원술은 비록 기울어져가는 옥탑방에서 지내도 소박한 꿈을 꾸며 희망을 잃지 않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원술이 시장을 돌며 양말과 속옷을 팔면서 홀로 키운 딸 자야는 비싼 과외 한 번 받지 않고도 유명 예고 성악과에 합격하는 등 타고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야가 다니는 유명 예고의 친구들은 장애인 아버지를 둔 가난한 자야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봅니다. 부유층 친구들의 왕따와 폭력, 상습적인 성폭행까지, 자야가 견뎌 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었습니다. 결국 자야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자야를 잃은 슬픔에 원술은 오열합니다. 진실을 찾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원술의 손을 우리 사회는 끝내 외면하고, 원술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원술 역을 열연한 배우 김정균은 영화 시사회에서 “장애인 및 아동에 대한 성폭행 범죄의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법 개정안인 ‘도가니법’에 이어, 이 영화로 인해 ‘지렁이법’이 나왔으면 한다.”라고 개인적인 바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공지영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도가니>는 관객 수 460만 명을 동원하면서 전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개봉한 <지렁이>를 보면 <도가니>와 닮은 점이 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입니다. <도가니>는 2005년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고, <지렁이>는 전주 보복살인사건과 청주 학부모 살인사건 등을 포함해 실제 일어난 30여 건의 학교 폭력 사건 등을 조사한 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고 합니다. 또,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이 억울한 희생을 당했다는 점과 사회가 이들의 절규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는 점도 두 영화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 <도가니>>의 결말 부분에 서로 야합하는 기득권 세력의 추악한 모습과 사회적 부조리에 분노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있었다면, <지렁이>에서는 현실에 분노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좀 더 적극적인 장애인의 모습이 그려져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할까요?
실제로 배우 김정균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말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대립구도 때문에 본인의 연기로 의도치 않은 오해와 편견을 불러 일으킬까봐 감독과 수없이 상의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김정균의 장애인 연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김정균은 지난 1994년 방송된 KBS 장애인 특집 드라마 ‘흔히 볼 수 없는 사람’에서 뇌성마비 장애를 지닌 회사원으로 분해 열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도 김정균은 장애인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담아내기 위해 뇌성마비 장애인 친구와 함께 생활하기도 하고, 어금니를 뽑기도 하는 등 배우로서 기울일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어느 영화잡지에서 <지렁이>를 평한 것을 보니 장애인이 직접 복수에 나서는 것을 두고 비현실적인 설정이라고 논평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과 비현실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혹시 현실에서 들리지 않는 침묵이 비현실일 것 같은 세상에서 소리 없는 절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비현실적인 세상에서나 있을 법한 권력의 야합이 소외계층을 짓밟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족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이 있고, 법정 공휴일도 많이 있습니다. 1년 중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도 5월에 몰려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즐겁게 나들이 하는 5월이 되면 저는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수필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납니다.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가정의 달인 5월이 내 가정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남의 가정도 생각해 주고, 주위 사람들도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때마침 개봉한 영화 <지렁이>가 가정의 달을 맞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자기 딸과도 사랑을 나누고, 서로 돕는 진실한 이웃과도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사람이 자기 가족하고만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프게 된 영화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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