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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모르는 사이 타인의 영혼을 구하는 일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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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모르는 사이 타인의 영혼을 구하는 일

박준범(YTN PD)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를 쓰지 못하고 1급 장애인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어려서부터 학교를 업어 데려다준 어머니가 있었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학 입학시험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 딸을 위해 학교를 직접 찾아다니며 시험 볼 기회만 달라고 사정하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녀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 대학 교육도 받을 수 있었고, 미국에 유학까지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의 암 선고 이후 치열한 투병 끝에 지난 2009년 5월 아름다운 글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남기고 지구별과 이별하였습니다. 바로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였던 故 장영희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장영희 교수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본인이 가진 장애 때문인지 여러 글에서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수필집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는 학창시절 대학교 체육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F학점을 받은 억울한 사연과 쇼핑몰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아이 엄마가 목발에 의지해 걷고 있는 장영희 교수를 보고 “너 계속 울면 저 사람이 잡아간다.”라며 아이를 위협해 울음을 그치게 한 황당한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잠옷 가게에서 고가의 상품 가격을 묻자 가게 주인이 내복 한 벌을 꺼내 싸게 주겠다며 불편한 배려를 한 경험 등을 이야기 합니다.
 장영희 교수는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에 어울리는 고전을 함께 제시하며, 우리에게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도록 생각의 시간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상점에서 거지 취급을 받은 경험은 ‘걸인 시인’으로 잘 알려진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W. H. Davis, 1871~1940)의 생애와 <가던 길 멈춰 서서 Leisure>라는 대표작과 연결시키기도 하고, 목발을 짚고 서 있는 자신이 괴물로 묘사되는 경험은 문학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의 부정적 이미지의 사례들과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에서는 본인의 에피소드 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작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소개, 작품 속 장애를 가진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동안, 이 책이 결코 장애를 주제로 엮은 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삶과 사랑과 문학에 대한 저자의 단상이 녹아 있는 문학 에세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가운데 장애인과 장애에 대한 부분을 뽑아 나열하는 것은 아마도 저자인 장영희 교수가 장애인으로 살며 겪은 삶의 고난이 묻어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자와 함께 이 책을 따라 문학 속으로 산책을 하다보면 어느덧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나의 인식에 대해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이 책 가운데 <진정한 행복>이라는 장(章)에서는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한 일’에 대한 사례로 영국 빅토리아조의 대표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tt Browning, 1812~1889)이 쓴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 Pippa Passes, 1841》가 소개되기도 합니다. 베니스의 실크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 피파는 1년 중 단 하루 휴가를 얻습니다. 휴가 날 아침 너무나 기쁜 마음에 설레며 집을 나선 피파는 이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네 사람의 삶을 동경하며 차례차례 그들의 창문 아래를 지날 때마다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피파가 부른 아름다운 노래는 피파가 부와 권력을 기준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네 사람의 영혼을 구하게 됩니다. 날이 저물고, 자신이 네 사람의 영혼을 구한 것도 모른 채 피파는 단 하루뿐인 휴가를 헛되이 보낸 것을 슬퍼하며 고달픈 내일을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든다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故 장영희 교수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에 장애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바꿔 놓은 ‘피파’는 아니었을까요?
 최근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신임 대통령과 국민들은 당분간 허니문(honeymoon) 기간을 가질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민들의 갈채를 받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4월20일은 37회 장애인의 날이 있었습니다. 이 날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장애인 관련 대선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 권리보장법 제정,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지역사회 만들기, 국가가 장애인의 건강을 책임지기, 장애예산 확충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다 시급한 사안들이고, 장애인과 관련 단체들의 소망을 담은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습니다. 다양한 공약들의 기저에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물론 포함 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국민들이 저마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기대와 요구를 쏟아 내고 있습니다. 어느 정책 하나 중요하지 않은 정책이 없고, 시급하지 않은 정책이 없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인식 개선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시급한 정책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문재인 대통령이 꼭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것은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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