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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사랑입니다.”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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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사랑입니다.”

박준범(YTN PD)
 얼마 전 EBS 다큐시선에서 <꼽슬과 빙구>라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방영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신 분도 계시고 안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일단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제가 간단히 프로그램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꼽슬과 빙구>는 서울대 캠퍼스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휴먼다큐멘터리인데요, 제목의 꼽슬이는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는 서울대 심리학과 하태우씨의 별명입니다. 그리고 빙구는 빙그레 잘 웃는 서울대 미학과 하은빈씨의 별명이고요. 둘은 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만나 서로 호감을 갖기 시작해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프로그램 속에서 꼽슬과 빙구는 야구장도 가고, 기차 여행도 하고, 같이 수업도 듣습니다. 둘의 만남이 시작된 건 빙구에게 호감을 가진 꼽슬이 빙구에게 줄게 있다며 사적인 만남을 요청하면서 이뤄졌습니다. 사실 딱히 줄 게 없었던 꼽슬은 집에 꽂혀 있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집어 들고 나갔다고 합니다. 프로그램 인터뷰 중 연애를 시작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빙구는 그 책을 다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둘은 배꼽을 잡고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둘은 또, 짬만 나면 함께 드라이브를 즐깁니다. 행복해 보이죠? 영상을 글로 전하려니까 여러분들의 상상력이 좀 필요할 듯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대학생 커플이 드라이브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어떤 장면을 상상하셨나요? 제가 본 TV 영상에는 꼽슬이 타고 있는 120kg의 거대한 전동 휠체어에 올라탄 빙구가 함께 바람을 가르며 거리를 누비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꼽슬이 별명인 하태우씨는 지체 장애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지금,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혹시 ‘그럼 빙구는?’ 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나요? 네, 빙구가 별명인 하은빈씨는 비장애인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이렇게 떠오르나요? 왜 그럴까요? 그냥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비장애인인 은빈씨는 태우씨와 함께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 해줍니다. 사탕을 주는 사람, 돈을 쥐어 주고 가는 사람, 눈물 어린 시선으로 행복하게 살라고 격려해 주고 가는 사람 등등...... 그런데 은빈씨는 이런 사람들의 시선이 불쾌하다고 털어 놓습니다. 태우씨는 격려 아닌 격려를 받는 은빈씨에게 팔자에도 없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은빈씨는 주위에서 ‘착하다’, ‘대단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정작 본인은 그냥 태우씨가 좋은 것뿐인데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둘의 모습이 어딘지 낯설지 만은 않았습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문뜩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2015년 한국장애인재단에서 개최한 제1회 장애인식개선 UCC공모전에 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TurnToAble의 발랄하고 발칙한 유-씨씨> 작품 속에서 명연기를 펼친 배우였고, 동시에 이 UCC를 만든 서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TurnToAble팀 소속이었습니다. 이들이 만든 UCC는 지금도 한국장애인재단 홈페이지와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내용은 일방적인 배려,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을 통해 평소 ‘선행’이라고 생각했던 배려가 오히려 장애인을 소외시키고 배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은빈씨와 태우씨는 장애인권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EBS TV와의 인터뷰에서도 사회를 향해 꾸준히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EBS 다큐시선 <꼽슬과 빙구>를 보다 보면, 태우씨의 노트북에 붙어 있는 “나라 바꾸는 장애인”이라는 스티커가 눈에 들어옵니다. 태우씨가 바꾸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은빈씨가 EBS 다큐시선과 인터뷰 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혹시 내 삶에 너무 큰 영향을 주지 않을까 두려움도 컸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애인을 만난다는 건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제 왜 우리가 이 커플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 아닌, ‘그냥’ 사랑하는 커플로 바라봐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에서 어린애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고 주장합니다. 또,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혹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숙한 ‘꼽슬과 빙구’의 사랑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 아닌 ‘그냥’ 사랑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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