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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이유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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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이유

박준범(YTN 라디오 PD)
 10여 년 전 교사들이 모여 들꽃 여행을 가는 모임에 초대 되어 함께 동행 한 적이 있습니다. 계절은 여름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고, 우리가 보러 간 꽃은 해당화였습니다. 서해안 태안반도 해변 어디쯤에 버스가 정차한 뒤, 들꽃에 대해 설명해 주는 선생님과 간단한 사진 촬영 기법을 설명해 주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동아리 소속 선생님들은 해변에 핀 해당화를 진지하게 관찰했습니다.
 해당화는 우리나라 바닷가 모래땅과 산기슭에서 나는 낙엽관목으로 꽃잎에서 방향성 물질이 많이 나와 향수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바람 부는 곳을 향하면 장미향보다 더 은은한 향이 난다고 합니다. 꽃은 5월에서 7월 사이에 피고 여름이 절정을 이룬 8월경에 적색 열매가 열린다고도 합니다. 해당화에 대해 설명해주던 선생님이 해당화는 모래땅과 같이 물 빠짐이 좋고 햇볕을 많이 받는 곳에서 자라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바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고 부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바다를 보러 갔을 때는 바다만 보였지 해당화를 보지는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관심 두지 않아 발견하지 못했던 바닷가 모래사장에 곱게 핀 해당화가, 해당화를 보러 갔을 때야 비로소 제 시야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보려고 하는 것만 보고, 들으려 하는 것만 듣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마 바다를 보러 간 제게 해당화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끄러운 칵테일파티에서 수 없이 많은 소음을 일일이 귀담아 듣지는 않지만 멀리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그 곳을 바라보게 된다고 하는 칵테일파티 효과도 비슷한 현상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주식투자로 유명해진 어떤 의사분이 제게 자신의 경험을 얘기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이 막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동료와 함께 인터넷 벤처 기업 투자 설명회를 다녀왔는데, 그 곳에서 동시에 같은 내용의 설명을 들은 본인과 그의 동료는 다른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투자 결정을 내린 동료가 소위 주식 대박을 친 기업은 지금의 다음카카오였습니다. 그때 그 의사 분은 어떤 정보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정보를 처리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정보처리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지난 2012년 8월 21일부터 ‘장애인 등급제와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를 주장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공동행동이 서울 광화문광장 지하에서 벌여 온 1인 시위가 9월 5일 1,842일의 대장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습니다. 5년 동안 광화문광장 지하는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의 ‘성지’가 됐습니다. 공동행동에 참여한 228개 단체 회원들이 돌아가며 매일 이곳을 지켰고, 배설물이 든 비닐봉투를 투척하고 가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모욕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칠흑 같은 5년의 어둠을 뚫고 이제 새벽을 맞는 분들은 친절했던 지하철 역사 청소노동자들과 따뜻한 두유를 건네 준 인근 편의점 사장 등 도움을 받은 고마운 분들에게 농성을 마무리 하며 감사패를 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광화문 광장 지하도를 다니며 무엇을 보았을까요? 혹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느라, 혹은 내가 보고자 했던 것만 보느라 이 분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바다를 보러 간 사람들은 몰랐어도 해당화는 거기 있었듯, ‘장애인 등급제와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친 그 곳에 5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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