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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들어온 장애인 문제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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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들어온 장애인 문제

최문정(프리랜서)
 2002년 3월 28일 아침, 나는 광화문에 있었다. 그 때 당시 장애인복지신문사 새내기 기자였던 내게 주어진 임무는 장애인의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홀로 농성을 벌이다가 수면제를 먹고 생을 마감한 ‘장애인 인권 운동가 고 최옥란’씨의 노제를 취재해 오라는 것이었다. 장례를 치르려는 장애인 단체와 이를 막아서려는 경찰, 늦었다고 경적을 울려대는 출근 차량이 한데 뒤섞여 광화문 일대는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날의 풍경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그렇기 많은 장애인을, 그리고 그렇게 심한 중증 장애인을 그날 난 처음 보았다. 분명 대한민국 아래서 함께 살아왔을 텐데 그동안 나의 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절규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이 사람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대학원을 갔고, 장애인 복지를 전공하게 됐다.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 당사자만의 문제인가

 지난 9월 5일에도 나는 광화문에 있었다. 그날은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지하도에서 농성을 벌이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842일 만의 농성을 마무리한 날이다. 공동행동은 장애인 이동권 확보, 장애인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주장하며 2012년 8월 21일 광화문에서 농성을 시작해 왔었으나 이 요구는 그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성장을 찾아 그간 복지 사각지대에서 목숨을 잃은 장애인 18명의 영정에 헌화하고 ‘장애등급 폐지 등을 논의하는 민관 합의체’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하자 공동행동은 농성을 끝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2002년 3월, 분노와 울분, 고함으로 가득했던 광화문과 15년이 지난 2017년 웃음과 노래와 춤으로 가득했던 광화문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15년 전과 너무 대비되는 모습에 미소가 조금 번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내 마음은 개운치가 않을까. 광화문 농성을 푼 그날, 장애인들은 노래와 춤을 추며 기뻐했지만 그 옆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보는 것처럼 낯설어 했다.
 아직도 특수학교는 혐오시설이라 믿으며 건립에 반대하는 이들의 소식이 들리고, 추석 황금연휴라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속에서 신병처리를 걱정하는 장애인들의 한숨도 들린다. 장애자녀를 감당하기 어려워 동반 자살한 뉴스와 장애인을 돈 한 푼 주지 않고 강제 노역 시킨 사례도 잊을 만하면 전해져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여전히 장애인 문제는 남의 문제로 여긴다. 사회복지를 전공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굉장히 좋은 일을 하시네요’라고 말하며 졸지에 나를 착한 사람으로 만든다. 여전히 사회복지는 ‘남의 문제를 도와주는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가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또 장애인 복지를 전공하면서 복지는 남의 문제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는 것을 매 순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설득하기
 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생기고, 그로 인해 나 역시도 동일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을 겪어 낼 때, 결혼 후 여성의 일-가정 양립 정책의 필요성이 피부로 와닿을 때, 내 친척이 치매로 도움이 필요하게 될 때 등등 복지는 매 순간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
 복지를 공부하기 전에 나도 그랬다. 복지는 남을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내가 세상을 통해 똑바로 얘기해야 하고 싶은 것은 ‘복지’는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장애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전제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가 나의 화두이며, 장애인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을 위한 정책 마련이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그렇게 될 때만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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