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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많아지는 시대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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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많아지는 시대

YTN 라디오 박준범PD
 며칠 전 제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8년 전 망막에 생긴 흑색종이라는 암 진단을 받으셨고, 안구에 칩을 삽입해 방사선 치료를 하는 항암치료를 받으셨습니다. 그 뒤 꾸준히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으셨는데, 지난해 말 피검사에서 나온 간(肝) 수치가 좋지 않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CT 촬영과 조직검사, MRI 검사를 차례로 받으셨지만, 망막에 숨어 있던 흑색종 암이 간으로 전이가 돼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 뒤 닷새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계시면서 의료 서비스에 의존하시다가 영면에 드셨습니다. 너무나 빠르게 진행된 일이라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 입원 이후 장례 절차까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장례 절차를 마치고, 아버님 유품을 정리하는데 아버님 유품 중에 장애인 등록증이 보였습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건강하셨고, 활동적이셔서 어머님을 대신해 시장에서 장을 보고, 살림도 도맡아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 아버님이 장애인 등급을 받으신 건, 망막암을 치료했던 한 쪽 눈이 서서히 시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이 직접 행정기관에 장애인 신청을 하셨고, 장애 6급 판정을 받으셨던 겁니다. 결국 저희 아버님은 비장애인으로 태어나 장애인으로 세상을 떠나신 거였습니다. 초고령화 시대가 오면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더 많아질 거라고 예측하던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좋던 싫던 간에 노화가 진행된다는 뜻이고, 정도에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막을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지난해 8월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가 65세 이상인 고령사회로 진입했습니다. 고령화는 선진국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대비만 하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초저출산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걸린 기간을 보며, 프랑스는 115년, 미국은 73년, 이탈리아 61년, 독일 40년, 일본 24년 등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불과 17년 만에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 진입도 2025년쯤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의식 때문에 일부에서는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전담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노인 문제와 장애인 문제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체 인구에서 비장애인의 수보다 장애인의 수가 더 많아 지는 시대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지만, 여전히 정부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고민이 깊어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전환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장애인이 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병원 수납 창구에서도 장애인 전용 수납 창구에서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수납 처리 하실 수 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만난 제 후배 PD는 딸아이가 불치의 병으로 장애를 갖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날 제가 그 후배 PD에게 딸아이의 장애인 등록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장애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표어가 있습니다. 장애는 불가능한 게 아니라 불편한 것뿐이라는 표어도 있습니다.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수많은 표어들이 있지만, 그 언어들이 우리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기까지 아직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고령화 시대에 초고령화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제도와 인식 개선이 병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짧은 시간 투병하시고, 그나마 다행히도 큰 고통 없이 편안히 임종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조문객들이 아버님께서 자녀들 고생시키지 않으시려고 그렇게 소천(召天)하신 거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자녀들을 위한 아버님의 사랑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어진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남은 가족들 모두 많이 슬프고 안타깝지만, 아버님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장애인 등록증을 보며, 제게 또 다른 가르침을 주고 떠나신 건 아닌지 큰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따뜻한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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