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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미투(Me Too)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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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미투(Me Too)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YTN 라디오 박준범PD
  몇 달 전 어느 잡지의 편집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잡지는 장애인 관련 기관에서 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논란 등 유명 인사들을 대상으로 미투(Me Too) 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편집 회의 도중 누군가 미투 운동을 화제로 올렸고, 저는 장애인 미투 운동을 이 기관과 이 기관이 발행하는 잡지에서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시리즈 기획물이 됐든, 사회적 캠페인 확산을 위한 어떠한 노력이라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지만, 편집 회의 참가자들 대다수는 장애인 미투 운동에 대해 난색을 표했습니다.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조심스러운 분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심도 있게 논의를 해야 할 주제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에 장애인 첫 미투가 언론을 탔습니다. 지체장애 1급인 장애인 인권 활동가 박지주씨가 16년 전 당시 사무총장이였던 비장애인 활동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장애인 미투가 시작됐습니다. 박지주씨는 지난 4월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 성폭력 피해 사실을 언급하며 장애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박씨를 비롯한 장애 여성 3명은 더 이상 폭력과 차별을 참지 않겠다며 기자회견을 마치고 삭발식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 대구에서는 황당한 경찰들 때문에 분노한 시민들이 힘을 모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습니다. “대구 장애인 모녀 성폭행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KBS 보도를 통해서였습니다. KBS 류재현 기자가 [취재후]라는 인터넷 기사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해 제보를 받은 시점부터 취재 과정까지 자세히 설명해 놓기도 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실제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좀 더 구체적인 부분까지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인면수심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경찰의 처사에서는 어이가 없어 화낼 힘도 없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신체 나이와 정신 나이가 다른 발달장애인은 성추행이나 성폭력에 매우 쉽게 노출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6년 성폭력 상담소에 접수된 장애인 성폭력 상담은 2만886건으로 전체 성폭력 상담 10만1,028건의 약 20%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장애인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폭력 피해 사건은 2016년 기준 3,038건으로, 피해자 중 절반가량인 49.7%가 강간을 당했고, 39.9%가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피해자들의 장애유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2013년을 기준으로 전체 피해자 1,789명 중 72%가 발달장애인이었다고 합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성범죄의 희생자가 되어도 지적 장애인의 경우 진술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에 조사 당시의 환경과 조사자의 능력에 따라 정확한 진술을 얻는 것에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성폭행 사건의 경우 직접 증거보다 진술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러한 특수성을 감한해 경찰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통계를 봐도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부터 경찰이 장애인 대상 성범죄자를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비율은 10% 포인트 가까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서 ‘대구 장애인 모녀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 사건을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해 무혐의 판단을 내린 근거는 더욱 황당합니다. 가해자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했더니 이들 모녀를 협박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진실로 나왔다는 겁니다. 또, 가해자와 함께 살고 있는 동거녀가 세 사람이 성관계에 합의했다는 진술을 받아 들였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가해자가 기초수급을 끊겠다고 협박했지만 민간인인 가해자가 그럴 위치에 있지 않고, 이들 모녀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협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건데,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경찰의 이러한 판단의 근거에 수긍하기 힘들어 보일 겁니다. 대구장애인지역공동체와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검찰에 이 사건을 재조사 할 것을 요구했고, 검찰도 추가 조사를 통해 혐의 여부를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부터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은 권력에 의해 침해 받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이 있고,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도 타인의 존엄을 해칠 수 없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제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노력으로 확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조심스럽다는 이유로 장애인 미투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구 장애인 모녀 성폭행’ 사건을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며 수사를 종결한 뒤, 이 두 모녀는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를 휘졌고 다니는 가해자를 매일 마주쳐야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나 여러분 가족이 이런 피해를 당했다고 상상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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