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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의 소중한 추억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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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의 소중한 추억

YTN 라디오 박준범PD
  제가 살고 있는 곳은 고양시에 위치한 신도시입니다. 지금은 ‘삼송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삼송리’로 불리던 지역입니다. 3호선 구파발을 지나 지축 차량 기지를 지나면 삼송역이 있는데, 서울에서 일산으로 향하는 초입에 위치해 있습니다. 신도시가 세워진지도 벌써 6-7년이 되어 갑니다. 마을 입구에 소나무 세 그루가 세워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삼송리에는 신도시가 세워지기 전부터 ‘명현학교’라는 곳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와 가까운 곳에 있어, 저희 집을 가기 위해서는 ‘명현학교 앞’이라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야 합니다. 명현학교는 자폐성장애를 포함한 지적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사립특수학교입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넓은 부지와 수려한 자연 환경 속에 묻혀 있는 아름다운 교정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가을이 시작될 무렵, 동네 아줌마들이 모인 인터넷 지역맘 카페에서 명현학교가 〈마을 작은 문화제〉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내가 제게 함께 갈 것을 제안 했습니다. 주말에 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 동네에 있는 학교가 어떤 곳인지도 궁금하고 해서 아내와 함께 딸아이의 손을 잡고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관객들이 상당히 많아서, 제가 아는 동네 꼬맹이들도 꽤 눈에 띄었습니다. 딸아이의 친구들도 보이고, 자주 보던 이웃들도 상당히 많이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1부 체험행사는 대부분 장애인 인식개선 홍보와 체험활동으로 이뤄졌습니다. 중부대학교의 중등특수교육과 학생들이 직접 나와서 점자 팔찌 만들기와 수화 골든벨 대회를 진행했고, 장애를 극복한 위인들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아이들은 의외로 굉장히 즐거워하며 모든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던 체험활동은 명현학교에서 키우는 말에게 당근주기 체험이었습니다. 또, 그 말들이 이끄는 마차 체험을 할 때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였습니다.
  해가 서쪽하늘을 향해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 드디어 본행사인 열린음악회가 시작됐습니다. 율동과 수화 공연도 있었고, 명현학교 학생들의 태권체조 시범도 이어졌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큰 박수로 행사를 준비한 학생들과 관계자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저녁이 깊어지고 있을 때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졌습니다. 명현학교 학생들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었는데, 귀에 익숙한 음악들이 연주되자 많은 관객들이 아름다운 클래식의 향연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이 무대 인사를 할 때였습니다. 관객들이 열화와 같은 반응에 연주자 중 장애인 학생 한 명이 폭풍 같은 감격의 눈물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박수 소리는 더 커지고, 이를 지켜보던 많은 관객들이 눈시울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도 울고, 어른들도 우는 감동의 무대가 계속됐습니다.

  신도시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조용하던 삼송리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삼송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도시가 생길 때, 명현학교 학생들과 관계자들은 내심 근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혹시 지역민들의 민원이나 불협화음이 생기지는 않을까 말도 못하고 속앓이를 좀 한 것 같습니다. 사실 명현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아파트 후문 쪽으로 버스 정류장을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명현학교 학생들이 지역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1년을 준비해서 마련한 축제에 다녀온 어떤 지역민도 이제 더 이상은 버스 정류장을 옮기자는 말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명현학교 학생들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뿐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쌀쌀해지기 시작한 가을밤 소중한 추억 한 조각에 가슴 설레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을밤의 소중한 추억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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