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장애인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재가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재가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경복궁 나들이를 가는 것이었는데, 반나절 정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장애인 한사람마다 자원봉사자 한명이 배치되고, 인솔하는 사회복지사와 그 외 진행지원인력, 그리고 이동차량까지 꽤 규모 있게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장애인 관광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최근 들어 ‘자립생활’을 통해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장애인이 늘고, 장애인과 가족의 인식, 사회적 인식이 크게 성장하면서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의식은 먹고사는 문제인 의식주에 한정되지 않고 문화와 여가 향유의 욕구를 어떻게 충족할 것인가의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장애인의 관광권에 대한 논의는 서구에서는 이미 3~40년 전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에 이야기가 나오다가 정부차원의 정책이 시작된 것은 21세기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장애인 관광권’이라는 명칭보다는 ‘배리어 프리’라는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접근에 더 가깝다.
‘장애인 관광권’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접근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관광을 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곳으로 무언가를 타고 이동해야하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사먹고, 어디에선가 잠을 자야한다. 그리고 보다 즐겁고 알뜰한 여행을 위해서 우리는 관광 정보를 검색하고,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고, 맛집을 찾는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여행과 관광을 상상해보면, 이러한 일련의 계획과 실행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면, 청각장애인이라면, 휠체어를 탄 신체장애인이라면?
물론 장애인을 위한 여행프로그램이나 여행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소수이지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여행업체도 있고, 일반 여행사에서 장애인 여행관련 상품을 운영하기도 한다. 또 한국관광공사나 지방자치단체들에서 장애인을 위한 관광안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기사 등을 통해서 장애인 관광권에 대한 내용을 간간히 접하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장애인이 자유롭게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여행과 관광을 누리기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여행에 대한 정보습득에 있어서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이트 등에서 장애인이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무장애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1박2일 이상의 여행을 위한 숙박지에 대한 정보는 많이 부족하다. 장애인이 맘 편하게 묵을 수 있는 편의시설을 갖춘 숙박지가 많지 않음이 정보부족의 한 이유일 것이다. 일단 여행지를 정하고 장애인이 여행을 위해 친숙한 집을 떠나 밖으로 한발 내딛는 순간부터 전쟁은 시작된다. 여전히 버스 등 대중교통의 장애인의 접근성 문제는 진행 중이다. 여행을 위해 차량을 렌트하려고 해도 렌트할 수 있는 장애인 전용 차량은 수가 적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대표적인 관광지인 제주도의 경우 렌트할 수 있는 장애인 전용차량은 도내 렌터카 업체 3곳 기준, 13대에 불과하다(‘발 없는 장애인 발 돼주는 ’착한 렌터카‘ 제주 어디?’, 제주의소리, 2014.11.7).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여행지에서의 식당은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문턱이 너무 높다. 시각장애인은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고를 수 없으며, 수화로 말하는 청각장애인은 자세한 주문이 어렵다. 하룻밤을 묵기위해 찾아간 숙소에서 휠체어 장애인은 잠자리에 눕기 위해 한바탕 땀을 흘려야 하고,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좁은 객실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여독을 씻어 내리고 쉬는 것은 힘에 부친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장애인들이 여행할 권리, ‘장애인 관광권’을 외치는 것은 장애인 비장애인의 구분을 떠나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먹고 입고 자는 것만이 충족되는 것만으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정보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의 삶과 비교하고 나의 삶의 질을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누릴 권리가 있음에도 누릴 수 없다면 그만큼 박탈감은 커진다. 장애인들은 아직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으며, 소외계층에 속해있다. 장애인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노력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공감과 지지가 필요하다. 혹자는 ‘장애인 관광권’의 확보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장애인이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아기가 탄 유모차에게도, 넘어지기 쉬운 어린이들에게도, 보행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도 편하고 안전한 공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약간의 불편은 감수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내가 무심코 넘어가는 불편함이 장애인들에게는 넘어가지 못할 높은 장벽이 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방문하는 여행지에서, 식당에서, 숙박지에서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질문을 던져봄이 어떠한가?
‘여기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