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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형제 마술사 ‘매직 준브라더스’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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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형제 마술사 ‘매직 준브라더스’

박금선(매직 준브라더스 어머니)
“엄마, 동대입구역 앞에 가면 마술도구 파는 곳이 있대요. 저랑 거기 좀 같이 가요”
2012년,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큰아들 준빈이가 겨울방학이 시작된 지 며칠 지나자 뜬금없이 마술도구를 파는 곳엘 가보자고 했다.
“갑자기 마술도구는 왜?”
“제가 지난학기 방과 후 수업 때 마술을 배웠는데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마술을 진짜 하고 싶어요.”
그런가 보다 했다. 뭐든지 재미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어느 토요일 아들 둘을 데리고 전철을 탔다. 두 녀석 다 선천적으로 소리를 못 들으니 구화를 한다 해도 목소리나 발음이 온전치 않고, 또 수화를 섞어서 대화를 할라치면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그날도 전철에서 아이들과 말 대신 수화로 대화하자 어떤 할머니가 ‘에구 엄마도 말을 못하네. 안됐구먼 쯧쯧쯧’라고 했다. 듣고 아무 말 안하고 있다가 내리면서 ‘얘들아, 동대입구역 다 왔다. 이제 내리자’ 또박또박 큰소리로 말했더니 기겁을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마술도구 파는 곳을 찾아갔고, 거기는 별게 다 있었다. 판매자가 간단한 스폰지 마술을 보여주자 아들의 눈은 더 반짝 거렸다. 몇 가지 마술용품을 집어 들더니 나를 보며 “엄마 이분께 저 마술 가르쳐줄 분이 있는지 좀 알아봐달라고 해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않는가. 속으로는 누가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가게 주인에게 아들의 부탁을 전달하며 전화번호를 남기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며칠 후 어떤 마술사라는 분이 진짜 전화를 주셨고, 한 달만 아들을 가르쳐보기로 했다. 그 전화가 오기까지 며칠 동안 연락 온 거 없냐고 들들 볶아대던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겨울방학 동안만 가르쳐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다 지나갈 무렵, 그 마술선생님은 엄청난 제안을 했다. 준빈이가 스테이지 마술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자신의 제자로 삼고 마술을 가르쳐 보겠다는 것이다. 청각언어 장애가 있는 준빈이가 과연 마술은 어찌 배울 것이고, 무대에서 이은결 마술사처럼 스테이지 마술은 어찌 하겠는가라는 생각에 당황했고,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반대했다. 그러나 준빈이는 완강했다. 자신은 정말 마술이 하고 싶고 선생님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렇게 또 아들의 고집을 못 이기고 1년만 더 가르쳐보기로 했다. 그것이 올해로 4년이 넘어간다. 얼마 전에 다시 그 동대입구 마술도구가게에 가봤는데 이제는 그 자리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장소였기에 서운한 마음으로 아들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마술을 배우고 무대에 서기 시작하면서 준빈이는 참 많이 변했다. 학교 담임선생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그림을 그릴 때 소심하게 작게 표현을 했었는데 마술을 배우면서는 큼직큼직하고 자신감 있게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준빈이는 9살에 특수학교 1학년에 입학하여 또래보다 나이가 많았고, 사춘기도 빨리 겪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시기에 마술을 배우면서 준빈이는 새로운 자아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농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조금은 수월하게 사춘기를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 비관하고 힘겨워 하는 눈치였지만 마술을 배우며 집중하고 무대에 서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 것 같다. 준빈이는 여러 가지로 마술을 통해 많이 성장하였다.

하지만 배우는 과정은 사실 청인(농인의 반대말, 정상적으로 듣는 사람을 말함)에 비해 몇 배의 어려움과 고충이 뒤따랐다. 아무도 수화를 사용할 줄 모르는 마술학원에서 혼자 듣지 못하는 준빈이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대화에서도 어쩔 수 없이 소외되기 일쑤였다. 소리로 듣는 정보들을 놓쳐버리니 시간이 흘러도 청인처럼 빨리 발전하기가 어려웠다. 2014년 여름 부산국제마술대회 본선까지 진출해서 무대에 섰지만 음악을 듣지 못해 액트와 음악이 따로 가면서 감점을 받았고, 유난히 긴장한 탓에 평소 안하던 실수를 하는 불운까지 겹쳐서 결국 수상을 못하게 되었다. 준빈이는 그때 참 많이 실망했고 ‘대회 트라우마’라는 표현을 하면서 대회가 무서워졌다고 말을 했다. 돌이켜보면 참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도 준빈이는 대회 후 한동안 방황은 했지만 결코 마술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정신력이 강해졌다. 마술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성장해가고 있는 아들은 대회 실패 이후도 꾸준히 즐겁게 마술을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행사에 재능기부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5년 2월쯤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준빈이가 손가락을 다쳤다. 이대로라면 무대에 혼자 설 수 없는데, 갑자기 취소도 못하는 상황이라 급하게 둘째 아들을 보조마술사로 무대에 세웠다. 그런데 정말 뜻밖에도 형 준빈이가 혼자 무대에 설 때 보다 동생이 함께 무대에서 코믹한 연기로 호흡을 맞추니 괜객들이 더 큰 박수로 환호해주었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세련되고 폼 나는 메인마술사인 형을 보조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고 웃긴 보조마술사 동생의 연기는 아주 일품이었다. 그렇게 해서 매직 준브라더스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해 인천수화예술제에 두 형제가 마술팀으로 경연에 나가 최우수상을 타면서 더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어깨 너머로 형의 마술을 보고 배운 동생은 비록 형처럼 마술은 프로가 아닐지라도 몸짓과 연기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가끔 마술공연 앞두고 액트를 짜고 연습을 할 때 둘이 수화로 대화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찰떡궁합의 파트너가 따로 없을 정도이다. ‘매직 준브라더스’는 많은 이들에게 응원을 받고 있다. 채널A ‘두근두근 감동카메라 미사고’ 와 SBS ‘스타킹’, EBS ‘희망풍경’, KBS ‘사랑의 가족’ 등 방송에 소개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공연요청이 와 많은 무대에 서보기도 했다.
준빈은 아직 못 이룬 꿈이 있다. 바로 전국마술대회에 입상해서 1등 트로피를 받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무대에도 서고 싶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농인 마술사들과도 교류를 조금씩 하고 있다. 2년 전 마술대회 수상에 실패한 후에는 다시 대회 준비를 엄두도 못 내더니 요즘은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아들의 가능성을 믿는다. 믿어주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은 비상한다. 스스로 날개를 만들어서 날아오른다.
듣지 못함으로 언어가 온전치 못하고, 그로인해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도 단절되었다.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 원치 않는 아픔을 맛보지만, 소수언어민족으로서 농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나름 당당하게 살아간다. 다만 청인인 부모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가슴 가득 근심을 품고 기우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청인이든 농인이든 개인의 특성에 따라 삶의 질은 현격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준빈이는 장애가 있음으로 해서 자신이 더 특별한 마술사이고 나름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하니 참으로 기특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남들이 가지 않은 이 길을 앞서 가고 있으니까 누군가 뒤를 따라 온다면 등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싶다고 한다. 그런 생각들이 참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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