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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아 사랑해”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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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아 사랑해”

YTN라디오 편성팀장 박준범PD

 

  딸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도 알지 못했는데, 점차 크면서 딸아이 이마에 붉은 반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인터넷으로 여러 정보들을 찾아 봤는데, 어린아이에게 흔한 붉은 반점은 ‘화염상 모반’과 ‘딸기혈관종’이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화염상 모반은 혈관이 뭉쳐져 생긴 붉은 점으로 신생아의 10%가량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데, 자연히 치료가 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초·중·고생이 됐을 때 레이저 치료로 완치가 가능하다고 설명 돼 있었습니다. 우선 피부과 병원을 방문해 우리가 찾은 정보가 맞는지 알아봤더니 의사 선생님은 우리 딸아이가 ‘화염상 모반’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서진이가 조금 더 클 때까지 사라지지 않으면 레이저 치료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딸아이가 성장하면서, 혹시라도 본인의 이마에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반면 아내는 딸아이의 앞머리를 늘 내려주면서 화염상 모반을 가려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진이가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칠 때가 됐습니다.

  이번 설 연휴 때 일입니다. 설날 아침 가족들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려고 하는데, 연휴 전에 딸아이의 앞머리를 잘라주지 못해서 눈까지 내려온 앞머리가 거슬렸는지, 누나가 머리띠를 건네주며 딸아이의 머리를 넘겨주려 했습니다. 그때 딸아이는 고모의 손길을 거부하면서 늘어진 앞머리 위로 머리띠를 얹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가족들이 모두 서진이 이마가 예쁘니까 앞머리를 시원하게 올려도 예쁠 거라고 한 마디씩 건 냈습니다. 저는 딸아이에게 직접 머리띠를 하고 혼자 거울을 본 뒤에 예쁜 모습으로 결정하라고 결정권을 내주었습니다. 잠시 딸아이가 머리띠를 하러 방으로 들어 간 사이, 결국 누나가 아내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맨날 서진이 앞머리를 내려주니까 아이가 콤플렉스가 생겨서 절대로 앞머리를 올리고 다니려고 안 하지.” 그 말이 상처가 됐는지 그때부터 아내는 하루 종일 뾰루퉁하게 부어서 지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서운했지만, 설날 아침부터 집안 분위기가 나빠지는 게 싫어 조용히 넘어 갔습니다. 서진이는 결국 혼자서 거울을 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 본 뒤 앞머리 위에 머리띠를 얹는 걸로 결론을 내리고 차례상 앞으로 왔습니다.

  설날 아침 차례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문뜩 옛날에 읽은 동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한 쪽 눈썹이 없는 여인이 그 사실을 숨긴 채 늘 화장으로 한 쪽 눈썹을 그리고 다녔는데, 결혼할 때까지 그 사실을 숨기고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몹시 더운 어느 여름날 그 여인은 남편과 함께 정원 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워낙 덥다보니 여인은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을 계속 닦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여인은 문뜩 자신의 한 쪽 눈썹이 지워졌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 당황한 여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훌쩍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자신의 거짓이 남편 앞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때 여인의 남편이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여인의 지워진 눈썹이 있는 곳을 피해 진짜 눈썹이 있는 주위의 땀을 닦아 주었습니다. 여인의 남편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따뜻한 배려를 깨달은 여인은 더욱 큰소리로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우리 딸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진이가 콤플렉스 느끼지 않도록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딸아이의 화염상 모반을 가려주려고 앞머리를 내려주는 아내의 행동도 모두 잘못 된 행동이었다는 깨달음이 일었습니다. 가슴이 몹시 아려 와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딸 서진이를 꼭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서진아, 사랑해!”라고 속삭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서진이는 늘 그렇듯이 천진하게 “나도~”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진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서진아, 아빠는 서진이 모습 그대로 사랑해. 서진이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모습이든, 그냥 서진이니까 사랑하는 거야. 아빠 딸 서진이, 아빠가 많이 사랑해~” 이 말을 들은 서진이는 당연하다는 듯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려다 물끄러미 아빠를 돌아보고는 “나도 알아. 근데 왜 지금 얘기를 해?”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응, 아빠가 꼭 해주고 싶었던 얘기였는데, 혹시 서진이가 모르고 있을까봐.”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서진이는 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본인이 가장 아끼는 인형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고, 때로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 진정한 ‘배려’라는 것을 깨달은 명절날 아침이었습니다.
 
가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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