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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를 더해가는 과정
작성자 mg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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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를 더해가는 과정
장혜원(울산서여자중학교)
10월 21일 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하나 떴다. 그 비행기 속에서 한 좌석을 차지한 나는 비행기의 크기를 다시금 실감했다. 이 커다란 비행기에 실려 스리랑카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 속에, ‘함께하는 우리’ 단원들이 섞여 있었다. 조금은 들뜬 기분과 어색한 기류를 느끼며, ‘함께하는 우리’ 단원 중 한 사람인 내가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미미하되 뚜렷한 각오와 포부는, 비행기의 이륙 소리와 함께 스리랑카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각오가 처음 제 모습을 드러낸 건, 봉사 자체를 해내기 이전 그 준비 과정이었다.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은 장애예술작가가 만든 인형으로 장애인 인식개선의 내용이 담긴 인형극을 스리랑카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과 그 인형을 만든 장애예술작가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스리랑카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형극을 제대로 선보이기 위해서, 서로 회의하고 여러 사항을 함께 수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보람을 느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 그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나의 노력이 큰 변화를 주지 않더라도, 나비의 작은 날갯짓만큼의 변화라도 보태고 싶어서 이렇게 활동에 참여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준비과정이 마냥 쉽지는 않았고, 그 결과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첫 번째 방문했던 학교에서는 인형극 전의 작가소개 발표도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고,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혔던 인형극은 아직 해결치 못한 부분들이 고스란히 드러났었다. 스리랑카의 덥고 습한 날씨와 바뀐 환경으로 인해 힘든 점도 많았고 준비했던 것들을 충분히 전달하기 못한 것 같아 아쉬움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다양한 공연을 보여준 스리랑카 학생들 덕분에 또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날의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날 발표를 위해 더욱 준비에 열을 다했다. 이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두 번째 학교에서는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우리는 ‘장애인 인식개선’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부족했고 버벅거렸던 첫 발표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공연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프로그램이었을 텐데도, 환하게 웃어주는 모습, 또 그들이 노력한 결과를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모습에서, 다음 프로그램을 위한 의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날의 문제점에 대한 피드백을 듣고, 개선해 나가고자 할 수 있었던 것도, 그곳에서의 모습들이 준 새로운 각오와 다짐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지 학생들을 위해 장애인 인식개선 프로그램을 우리가 진행하고 준비하며 각오를 다졌다면, 스리랑카의 장애인에게 무료로 의수족을 제작·제공해주는 기관을 방문했을 때는 장애인 인식개선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스리랑카에 가기 전 사전과제로 한국의 장애인 보장구와 의수족에 관련하여 조사하였었고, 한국의 보장구 관련 제도 등이 그 가치와 필요성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었다. 하지만 스리랑카에서 보고 들은 현지의 의수족 지원을 보며 새삼 장애인 인식개선을 통하여 장애인의 지원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고 각오를 다시금 새겨 넣었다.



시기리야로 문화 탐방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원들 사이의 어색함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힘을 덜 들이고 좀 더 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던 것 같다. 장시간 버스에 있는 게 찌뿌둥하다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시기리야를 올라가기 전의 습한 날씨에 괜히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이렇게 온갖 생각 가운데서 산을 올랐다. 알게 모르게 새로운 기분이 솟아났다.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의 아찔한 광경은 신기했다. 복잡한 인파 속에서도 옛 왕국의 신비한 분위기가 내 주변에서 감돌았다.

하나둘 발을 내디디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처음 스리랑카에 도착했던 때의 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사탕을 건네는 현지 아이와 인사를 하고, 시기리야를 지키는 경비원의 정겨운 한국말 인사에 미소가 지어지고, 이곳을 걸었을 스리랑카 왕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어느새 시기리야의 정상에 올랐다. 모두 조금씩 지쳐 있었지만, 그만큼의 성취감과 행복에 가득 잠겨 있었던 때였다. 시기리야의 공기는 맑았다. 덕분에 나의 마음도, 그만큼 맑아졌다.

그 뒤에는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PPT 발표 준비를 하고,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단원들이 누구 하나 뺄 것 없이 고루 친해진 데다, 며칠간의 바쁜 일정으로 몸이 모르는 새 지쳐 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롤링페이퍼를 쓰고 송별회를 하면서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면서도, 이제 스리랑카에서의 여정은 끝났다는 사실을 계속 잊을 정도였다. 한국에 도착하고, 비행기에서 내려,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모두와 헤어져서 집으로 향할 때야, 정말 끝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와 닿을 뿐이었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이런 거구나 - 스리랑카에서의 여정을 다시 되돌아보면서, 여러 기억을 다시 정리해나갔다.

처음에 내가 했던 각오-최선을 다하고 모든 걸 즐기며 해내겠다는 각오-를 완벽히 지켰다고는 할 수 없다. 중간에 그 각오를 저버릴 때도 잦았고 괜히 귀찮아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듯 그 과정이, 내게 그 다짐들을 다시 찾아주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다사다난한 스리랑카의 여정 속에서, 어쨌든 처음의 생각과 결의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으므로. 또 돌아올 때 즈음엔, 그 결의를 지키고 또 더 많은 생각을 품고 돌아올 수 있었으므로. ‘함께하는 우리’ 스리랑카 해외봉사 프로그램은, 내게 있어 각오를 이뤄가는 과정이었고, 그것에 각오를 더해가는 과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스리랑카 봉사의 우여곡절을 함께한 단원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스리랑카에서 스쳐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나의 각오처럼,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기억처럼, 오랫동안 더해지고 더해져서 마음속에서 깊이 지켜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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