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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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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수정(몽골해외봉사단)
  학교에서 포스터를 보고 신청을 할 때 대상 수여자는 몽골 봉사활동의 기회를 얻는다는 것을 보고 함께 참여한 친구들에게 여기에 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진짜로 이 자리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보다 빨리 출국 날이 되었고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기대보다는 불안함과 걱정이 앞섰다. 초반에 워낙 우린이랑만 붙어있던 탓에 친구들을 사귀기 어려웠고 친해질 수는 있을지, 힘든 여정이 되지는 않을지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탔고 몽골의 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그 모든 마음들은 기대로 부풀러 올랐다. 버스까지 걸어가기만 했는데도 즐거웠다. 그렇게 몽골과의 첫 만남은 시작부터가 좋았다.
  호텔에 도착해서 방 배정을 받았는데 막내와 함께 쓰게 되었다. 동생 없이 자란 나에겐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지부터가 고민이었다. 고민이 무색하게도 가희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고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가 더 챙김을 받은 것 같다. 피곤함에 지쳐 곧바로 잠들고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보육원을 방문하는 날, 너무 가슴이 설렜다. 어떤 친구들이 있을까, 무슨 말부터 꺼내야하지? 여러 생각들을 하며 보육원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허허벌판같이 보이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보육원이라기 보단 작은 마을 같았고 농구장에 축구장까지 우리 학교보다 더 좋아보였다. 처음 만난 아이들의 모습은 밝아 보이기도 언뜻 귀찮아 보이기도 했다. 어색함을 이기고 다가가기 위해 부족한 영어와 몽골어로 말도 걸어보고 웃음도 지어보이자 아이들도 금방 마음을 내주었다.
  나의 짝궁은 후슬렌이라는 갈색머리를 가진 소년이었다. 다행히 후슬렌의 영어 실력은 수준급이여서 내 말을 다 알아들었고 다른 친구들에게 통역까지 해주었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를 만나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우리 조의 통역선생님께서 바쁘셨기 때문에 나중에 춤을 연습할 때 아이들하고만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후슬렌이 우리의 의견을 다 전달해주었다.
  다시 첫 만남으로 돌아오면, 서로의 이름을 써주고 옷에다가 붙여주었다. 그리고 진짜 A팀이 모두 모였다. 이곳의 친구들은 생각보다 한국어를 잘했고 K-POP에도 우리보다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할 줄 아는 몽골어는 센베노밖에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의사소통하기가 쉬웠다. 물론, 통역사 선생님들의 도움이 가장 컸다. 우리에게 주어진 적은 시간들 동안 우린 서로의 이름을 열심히 불러가며 함께 공연을 위한 연습을 하였다. 우리 조에선 우앙가가 댄싱머신이었는데 정말 춤을 잘췄다. 엄청 유연해서 우리는 절대 따라하지 못할 동작들도 척척 해내었다. 후슬렌은 정말 똑똑해서 우리가 춤을 한번 알려주었더니 바로 완벽하게 외워서 쟈파에게 알려주었다.
  계속되는 연습에 지칠만한데도 우리를 끌고 와서 연습하자고 하기도 하고 나머지 친구들 모두 열심히 해주어서 고마웠다. 보육원에서 지냈던 짧은 시간들은 내겐 정말 소중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나중에는 대부분의 아이들과 친해져서 좋았다. 애들이 내가 몽골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알고 막 놀렸다. 그래도 좋았다. 나중에 몽골 관광을 할 때조차도 차라리 보육원에 가서 아이들과 뛰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
  마지막 날, 아침 일찍부터 화장과 머리를 하고 아이들과 연습을 하면서 공연을 준비했다. 몇몇의 아이들밖에 보지 못한다는게 조금 슬펐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 공연을 하고, 바쁘게 한복으로 갈아입고 무사히 패션쇼까지 마쳤다. 아마 나에게도, 이곳의 친구들에게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바쁘게 시간이 흐르고 헤어짐의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갑작스럽게 가야한다는 소식에 한복을 갈아입다가 뛰쳐나와서 아이들을 배웅해주었다. 이곳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 왔지만 받아가기만 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후회를 남기지 말자 다짐했지만 후회만이 남았다. 그렇게 잘가라는 말만 남기고 아이들을 보냈다. 와글와글 시끌벅적 했던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정말 공허함만이 남아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날이 쉽게 오진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진짜 마지막일 가능성이 크기에 더 슬펐다.
  그래도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인연들이 남았다. 먼저 해외봉사를 통해 만나게 된 한국 친구들, 언니들, 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너무 대단한 친구들이 이곳에 왔다. 항상 다정하게 나의 말을 들어주었던 언니들, 몇 년은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해준 동갑내기 친구들, 특히 내가 틱틱 대는 말들을 해서 기분이 나빴을 텐데도 그저 지나쳐준 남자친구들, 부족한 언니, 누나이지만 먼저 챙겨주고 배려해준 이쁜 동생들까지. 나에겐 너무 과분한 시간들이었다. 낯가리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메이크업 언니들, 이외에도 정말 많다.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소중한 시간들을 선물해주신 많은 분들. 몽골 친구들도. 몽골친구도, 한국친구도 몇몇 친구들과 페이스북 친구도 맺었고 인스타도 서로 팔로우했기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조금은 생긴다. 그래서 이별에 오랫동안 슬퍼하지 않았다. 내가 만나러 가면 되는 거니깐.
  내가 이 감사한 마음들은 고스란히 전해줄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성장해서 보답할 것이다. 장애든, 국적이든, 나이든, 성별이든, 종교든 한 사람을 나타내는 세상에서 규정짓는 수많은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저‘친구’라는 말 한마디로 모두 소개할 수 있는데. 나의 모든 친구들에게 고맙다.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었고 우리 모두가 이 추억을 간직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나중에 희미해지더라도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아 잊혀지지 않기를 원한다.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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