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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당신에게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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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당신에게

박준범PD(YTN라디오 편성팀장)

 

  이번 달 원고 청탁을 받을 때, 장애인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어떤 소재로 글을 쓸지 고민하다가 인터넷으로 몇 가지 키워드를 넣어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글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네이버 지식인에 중학교 2학년이라고 소개한 학생이 방송사에서 일하기를 꿈꾸고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본인을 지체 장애인이라고 밝힌 중학생은 장애인이 방송사에서 일할 수 있는 분야와 직업이 뭐가 있을지 물었습니다. 이 학생의 질문에 대해 교육부 진로 상담 담당자가 답변을 올렸는데, “교육부 학교생활컨설턴트입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이었습니다. 답변의 요지는 방송사가 바쁘게 돌아가는 곳인 만큼 장애인들이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방송사에서 일하는 장애인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KBS는 장애인 고용촉진법에 따라 각 전형마다 장애인을 우대하고 있고, 다른 방송사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눈여겨 본 부분은 교육부 학교생활컨설턴트라는 분이 올린 답변 중에 방송사에서 장애인이 근무할 수 있는 분야라는 답변이었습니다. “빠르게 움직이거나 돌아다녀야 하는 취재기자, 촬영기자, 카메라, 음향 등은 아무래도 지체장애인이 근무하기는 어렵겠지만, 영상편집, 그래픽 편집, 번역, IT, 작가 등 많은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는 얼마든 지체장애인이 근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미래에는 분야를 불문하고 지원 가능하게 될 수도 있지요.”라고 답을 주셨는데,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는 저는 약간 생각이 다릅니다. 요즘은 취재기자 중에서도 내근 기자들이 많고, 빅데이터를 연구하는 데이터저널리즘도 확산되고 있는 중입니다. 발로 뛰는 현장 기자들도 있지만, 사무실에서 자료를 분석해서 기사를 발굴하는 취재기자도 중요한 영역 중에 하나입니다. 또, 촬영기자의 경우 취재 경쟁에서 몸싸움에 밀리지 않게 체격이 큰 사람들이 있지만, 여자 촬영기자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더군다나 스튜디오에서 스튜디오 카메라를 담당하고 있는 영상기자의 경우 굳이 빠르게 움직이거나 돌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영상에 대한 감각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영상편집, 그래픽편집, 번역, IT, 작가 등 많은 분야에서 장애인들이 얼마든 근무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일하고 있는 PD영역도 마찬가지겠죠.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는데, 그럼 왜 방송사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많지 않을까요? 이 원인을 찾기 위해 우리는 잠시 매스미디어의 기능 가운데 환경감시기능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스미디어의 환경감시 기능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분배하는 활동을 말하는데, 언론이 일상적으로 다루는 뉴스의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매스미디어가 천재지변을 예고하고, 주변 환경의 정보를 제공해 수용자가 위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말합니다. 일기예보뿐만 아니라 증권정보, 공연 소식 등 각종 정보도 이 환경감시기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매스미디어의 환경감시 기능에도 역기능이 있습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사건 사고를 지나치게 많이 접한 사람들은 온통 세상이 범죄로 가득하다는 불안감에 싸여 사는 경우도 있고, 특정 국가나 사회의 부정적 보도를 접한 사람들은 그 집단에 대해 편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환경감시기능의 역기능 중에는 라자스펠드와 머톤(Lazarsfeld & Merton)이 주장한 ‘마약 중독의 역기능(narcotizing dysfunction)’도 있습니다. 매스미디어의 보도를 통해 전달되는 많은 양의 공공문제를 접하는 독자나 시청자들이 실제로는 오히려 공공활동에 무관심하다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환경 관련 뉴스를 자주 접하고, 환경 관련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사람들은 본인이 환경주의자라는 착각에 빠져 살지만, 실제로는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환경보호 단체에 기부금도 납입하지 않으며, 환경 단체 활동에 참여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방송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옳은 이야기만 쏟아 냅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규범을 지켜야 하고, 소수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 방송사 직원들은 어쩌면 라자스펠드와 머톤이 우려한 마약 중독의 역기능에 빠진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장애인 고용을 의무화해야 하고,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없다고 방송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들의 직장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네이버 지식인의 답변 마지막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습니다. 지금은 아직 지체장애인이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장면이 생소할지 몰라도, 질문자님께서 취업을 하게 될 10년~15년 후에는 자연스러운 일이 될 지도 몰라요. 혹은, 질문자님께서 지체장애인이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장면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도록 물길을 터주는 개척자가 되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0년 후, 15년 후 방송사에서 더 많은 장애인을 볼 수 있게 될까요? 남은 과제는 방송사 종사자들의 몫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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