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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동료가 있습니다.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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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동료가 있습니다.

박관찬(통통기자단, p306kc@naver.com)

 


  꿈에 그리던 새 직장에 처음으로 출근한 날, 일을 배우느라 오전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 점심시간이 왔습니다. 첫 번째 출근이라는 점에서 긴장과 설렘이 공존했던 덕분일까, 무척이나 배가 고팠습니다. 도시락을 준비해온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식사를 하고, 저를 포함한 몇몇 동료들은 사무실 근처의 순대국밥 집으로 향했습니다. 테이블 하나에 저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 둘러앉아 순대국밥을 주문했습니다. 고픈 배를 참으며 순대국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동료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동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기보다, 그들의 얼굴표정을 들여다보며 어떤 분위기인지 느껴보았습니다. 웃고 있는 표정들이 즐거워 보입니다. 동료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확인한 저는, 바로 앞에 놓인 물컵의 물을 한 모금 들이켰습니다. 그리곤 자켓 안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기 위해 물컵을 든 손을 위로 들어 올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의 바로 왼쪽에 앉아있던 동료가 자켓 안주머니에 넣으려는 저의 왼손을 잡더니, 제 손바닥에 본인의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 아침마다 영어 학원에 갔다가 출근하신대요.” 순간 멈칫했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동료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를 제 왼쪽에 앉은 동료가 제 손바닥에 글로 적어주며 ‘통역’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는 제가 앉아있는 자리를 기준으로 말하고 있는 동료의 위치, 즉 10시 방향에 있는 동료가 지금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저는 청각장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문자나 수어 등으로 통역을 받지 않으면 대화가 쉽지 않습니다. 업무는 근로지원인의 통역을 받으며 수행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식사시간에서까지 통역을 제공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 역시 식사시간에까지 근로지원인이 통역을 하는 ‘업무’적 상황에 놓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근로지원인도 식사를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식사시간에 저의 왼쪽에 앉은 동료가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통역이라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를 공동체 속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어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입니다. 심지어 손바닥에 적어주는 글 속에 세심한 배려도 담겨 있습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만 적어 준다면 ‘누가’ 말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 ‘↗’, ‘↑’, ‘→’ 등 화살표를 활용하여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무척 배가 고팠던 것도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그 동료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 동료는 그 뒤로도 직원들과 벚꽃놀이를 할 때도, 직원 중 누군가 생일을 맞이해서 함께 축하를 할 때도 제가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손바닥 필담’을 의사소통의 한 방법으로 오랫동안 사용했지만,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말하는 사람의 위치를 화살표를 통해 알려주는 방법은 이 동료가 처음입니다. 이 방법은 말하는 사람의 이름을 굳이 손바닥에 따로 적지 않아도 되고 더 쉽게, 더 빠르게 대화를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신선하게 와 닿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손바닥에 적어서 전달하는 방법은 아직 생소하고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 직장에서 만난 너무나 좋은 동료 덕분에, 이젠 다른 동료들도 이 방법을 어려워하지 않고 저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에 적응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애를 먼저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가 생깁니다. ‘선입견’과 ‘편견’입니다. 하지만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받아들인다면, 그의 능력과 역량, 재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먼저 바라보는 시선이 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의 든든한 직장 동료처럼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공동체 속의 똑같은 구성원으로 인식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장애인 근로자도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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