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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일터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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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일터

신은미(통통기자단,sem02358@gmail.com)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일터 이미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일터는 특별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으로 인한 계약기간에 의해 회사를 옮겨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는, 즉 안정적이어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곳이다. 급여도 기본적인 의식주를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아무리 일을 해도 근로빈곤(working poor)을 면하지 못하면 삶에 대한 희망보다는 절망이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워크투게더 사이트에서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의 구인공고를 보면 여전히 계약직(초단기 혹은 2년까지의 계약기간)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정규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결국 많은 구직 장애인은 계약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어떤 회사는 2년의 계약기간을 마치면 근무평정을 통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정작 계약기간의 종료 시기에는 정규직 전환이 불가하다고 통보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용공단과 기업체 모두 장애인 고용률을 채우는 양적인 측면에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다. 양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고용의 지속성 같은 질적인 측면에서도 장애인 고용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규직이 계약직보다 일의 능률도 높고 일터에 대한 소속감 또한 높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의 능률과 소속감이 높아지니 당연히 업무 만족도 역시 증가할 것이다. 현재보다 고용이 안정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싶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만큼의 급여를 받고 싶다. 지금 당장 정규직 일자리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이 원하는 일자리 형태를 그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인 당사자와 고용공단, 기업체 모두 장애인 고용에 대한 양적인 측면보다는 질적인 측면에서의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 내 사무실은 침대에서 두 걸음 앞의 책상이다. 별다른 것 없는 책상이지만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있는 업무용 노트북을 켜는 순간 사무실이 된다. 4시간 동안의 근무를 마치면 책상에서 퇴근을 해 식탁에서 늦은 아침 겸 점심밥을 먹는다. 근무시간 후에 나머지 시간은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내 업무는 쇼핑몰 페이지에 적힌 상품정보가 관련법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심의하는 업무이며 재택근무다. 누군가는 재택근무라 출퇴근 걱정 없고 근무시간도 적어 시간도 제법 여유 있게 쓸 수 있어서 좋겠다며, 좋은 근무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부럽다 고도 말한다. 이런 말은 나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라 생각한다.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직장에 소속감과 사명감을 상실시키고 교체 가능한 부속품같이 언제든지 대체해도 무방한 사람이란 생각을 한다. 2년으로 못 박은 계약기간 탓에 남들은 일터에 정착하고 있는 나이에도 여전히 정착을 못 하고 있다. 더욱이 어떤 회사들은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근무평정을 통해서 재계약을 통보해주기에 그 시기가 되면 불안하다. 재계약을 했다고 해도 2년까지여서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재택근무를 한 지 7년째 접어드는 지금까지 회사를 여섯 군데를 옮겨 다녔다. 다행히 운 좋게 일을 끊임없이 하고는 있지만 회사 업무에 적응할 때쯤 되면 일을 그만해야 하고, 갑작스럽게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인 걸까? 단지 장애인 고용률 늘리려고 만든 업무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고 있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업무시간이 주 20시간으로, 짧은 근무시간과 최저시급으로 월급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이 돈만 가지고 의식주 해결이 어렵다. 관리비며, 여러 가지 세금에 활동지원서비스(바우처) 본인부담금 납부까지 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장애인연금을 받고 있지만 생계유지에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한 가지 일을 더 하려고 해도 장애인 고용지원금의 이중 수혜 문제가 있어 할 수 없다. 기존에 근무하고 있던 회사와 별개로 또 다른 회사에서도 일을 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둘 중 한 회사가 고용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며 입사를 포기하라고 하는 바람에 한 회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거나 혹은 안 하는 장애인도 많은데 그럼에도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며 일을 하는 내가 부럽다는 말을 장애인 친구들과 부모님들께 종종 듣는다. 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도 말한다. 정말 그래야 할까? 지난 2월에 열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사업설명회에서 듣게 된 이야기가 내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20대 후반부터 각종 계약직을 전전하다 보니 자신의 나이가 50세가 되었다는 이야기.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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