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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용구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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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용구
김자연(장애인기자단)
날씨가 쓸쓸하면서도 포근해졌다. 올해의 추위는 부산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추위 속에 유독 거친 영화들이 많았던 가운데 '7번방의 선물'은 나에게 따뜻한 기운을 주는 영화였다. 쌀쌀맞게 부는 바람, 포근하게 내리는 눈 영화의 풍경은 사박사박 걷는 발자국 소리에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은 사이좋은 부녀사이가 중심이 되면서 지적장애인인 '이용구'와 그의 딸인 '이예승'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용구와 예승이는 작은 단칸방에 살면서도 서로를 돌봐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딸이 갖고 싶어했던 가방을 가지고 있던 아이를 따라가면서 용구와 예승의 인생에 한 국면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살해하고 강간했다는 누명을 쓰면서 교도소에 들어간 용구는 딸과 같이 살지 못하게 되지만 교도소 방을 같이 쓰는 5명의 사람들이 서로 합심을 해서 예승이를 용구와 같이 만나게 해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물론 사회적인 약자를 탄압하는 경찰과 검찰의 구시대적인 수사방식을 비판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왜 이 영화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지 궁금했다. 왜 1000만을 돌파하는 영화가 된 것일까. 단지 사리분별이 어려웠던 용구가 안타까운 것이었을까? 아니면 가령 용구와 예승의 부성애적인 사랑이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었던 것이었을까? 물론 배우들의 인지도가 뒷받침해 주었을 테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분이다.

모든 물건에는 장단점이 있듯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에도 극찬과 혹평이 갈린다. 전자는 부당한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은 부성애, 대중영화로서 소소한 장점을 가진 영화, 동화같은 이야기에 치유된 마음 등등이 있다. 영화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부분이 교도소 방안 색깔이 초록색이라는 점이었다. 초록색은 가로수 나뭇잎사이에 빛나는 햇살이 주는 친근함과 엄마가 손수 끓여주신 브로콜리 스프냄새와 같은 안정감을 느끼는 대표적인 색이다. 이 초록색 벽이 예승이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추운 언니에게 세일러문 옷을 입혀주고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성과 알록달록 색을 가진 열기구를 그리면서 내 머릿속에 인지되어 있는 감옥이라는 차가운 이미지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감상적이고도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또한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부분이 있는데 바로 교도소에서 만난 5인방이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용구를 따돌리고 괴롭히기보다는 용구와 예승이를 같이 지내게 해주고 용구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실험'을 해주고 말을 잘 못하는 용구를 위해 법정에서 진술할 말을 적어주었다. 그 장면은 모든 장애인들이 공감하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기 힘든 모습일 것이다. 또한 보통 사람과 다른 용구에게 허물없이 다가가는 사고뭉치 5명을 보면서 그동안 지적장애인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그동안 지적장애인들이 미안한 말이지만 그때는 말이 안 통하는 무서운 존재였고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세상 모든 지적장애인들이 영화에 나오는 용구의 모습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정하고 편안하고 유쾌한 용구를 통해 지적장애인들에 대한 내 장벽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반면에 혹자는 비현실적으로 검찰과 경찰을 비꼬았다. 결말이 뻔한 삼류이야기이다. 억지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는 등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아쉬운 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지적장애인을 연기하는 류승룡의 모습이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지적장애인들은 목소리가 아이같이 천진난만하고 약간은 미숙한 목소리를 내지만 복잡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했지만 잘 설명해 주면 이해하곤 했다. 하지만 영화 속 용구를 연기하는 류승룡은 너무나 과장되게 모자람을 극대화했고 목소리는 어른이 억지로 흉내 내는 6살짜리 아이와 같았다. 이런 지적장애인 역할을 다소 미흡하게 연기하여 극중 인물인 용구에게 집중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부당한 권력 앞에 단단한 부성애를 보여 주고자 하기 보다는 지적장애인인 용구가 말도 안통하고 아이들을 해치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더듬거리는 말투로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딸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큰 사람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만약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적장애인'인 이용구가 아니라 '인간' 이용구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 영화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교도소 전체에 용구의 처절한 목소리가 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마음의 목소리도 교도소 전체에 울렸다. '제발 용구 씨를 살려주세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그 누구보다도 딸을 사랑하는 아빠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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