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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를 되짚어 보게 하는 전쟁기념관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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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를 되짚어 보게 하는 전쟁기념관
도상현(통통기자단, dsh1905@naver.com)
사진 : 편집팀

아픈 전쟁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게 6월은 그 아픈 역사를 되짚어 보게 되는 달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언제 그러한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분단의 현실, 이산가족 그리고 상이군경들의 모습 속에서 그날의 흔적들과 여전히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잊고 있었던 그 날의 흔적들을 돌아보고자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전쟁기념관 안으로 들어갔다. 용산 전쟁 기념관은 조국을 지켜낸 군인들을 기리는 곳이자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의 한국 전쟁사를 전시한 기념관이다.

1층에 위치한 전쟁역사실에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무기들이 많이 전시가 되어 있었다.
고구려의 미늘갑옷과 쇠뇌, 조선시대의 불랑 기포(포신의 뒷부분에서 장전하는 대포로 15세기경 포르투갈에서 제작되었다) 등 여러 가지 무기들의 모습들을 잘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고구려의 미늘 갑옷 중 투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지금까지 TV드라마에서 본 투구는 양 옆에 뿔이 달려 있었는데 실제로 본 이 투구에는 뿔이 없었다. 현실과 다른 드라마의 모습에 속은 것 같아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그 외에도 조선개화기 당시 조선을 방문한 프랑스, 미국, 영국 등의 강대국 병사들의 복장과 무기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 다음 내가 찾아간 곳은 6.25 전쟁실이었다. 이 전시실에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으로 발발하게 된 6.25전쟁의 시작 배경부터 UN의 인천상륙작전,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한 1.4후퇴 그리고 1953년 7월에 맺은 휴전협정까지의  6.25 전쟁의 전 과정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전쟁 당시 남한과 북한이 사용한 무기들과 6.25 전쟁에 참전한 나라들과 당시 피난민들의 모습 등 6.25전쟁의 크고 작은 모습들까지 잘 나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6.25 전쟁실을 나와 나는 3층에 있는 해외파병실과 국군발전실로 갔다. 이 전시실에서는 지원을 받는 나라에서 지원을 주는 나라가 된 우리나라의 모습들이 있었다.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베트남으로 우리나라 군인들을 파병한 것을 시작으로, 이라크, 소말리아 등 분쟁지역에서 계속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군인들의 모습들을 통해 세계 속에서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해외에 파병된 군인들의 모습 외에도 우리나라 국군의 발전과정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전쟁기념관에는 이 외에도 무기와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는 대형 방산장비실 등 전쟁사 뿐 만 아니라 다양한 방위산업에 관련된 것들도 관람할 수 있었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전시물들이 가득한 용산전쟁기념관은 재미있고 유익한 곳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장애인들한테는 여전히 불편하고 어려운 곳이라는 느낌을 곳곳에서 받았다.

사실 내가 전쟁기념관에 와서 가장 먼저 한일은 장애인 전용 경사로를 찾는 일이었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발견한 장애인 전용 경사로는 전쟁기념관 정문 입구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경사로였다. 나는 그 경사로를 따라 걸어가 보았다. 바로 기념관입구로 연결되어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6.25참전 전사자들의 명단이 있는 길을 지나고 나서야 기념관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념관으로 들어오는 것부터도 제대로 된 안내판이 없어서 불편했었는데, 기념관 안에 있는 전자안내판에서도 “장애인”이란 정확하고 분명한 명칭으로 표시되어있지 않은 것을 보고 실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시실 이동 시 이용한 장애인 경사로도 지저분하고 휴대폰 조명을 사용해서 내려가야 할 정도로 굉장히 어두웠다. 그리고 장애인 전용 리프트는 아예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엘리베이터가 있긴 했지만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모습은 전시실 관람 내내 본 적이 없었다. 딱 한번 우연히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휠체어를 타신 분이 보호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 기념관을 이용하는 데에 불편함이 많아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장애인의 이동의 불편함 뿐 만 아니라 전시실을 관람하는 곳에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서비스도 기념관 안에서 한 전시실의 한 두 부분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점자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용 블록도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장실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남녀구분이 없는 장애인 화장실과 계단 옆에 위치해있어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이용할 수조차 없게 되어 있었다. 내가 가본 화장실 중 딱 한군데만 성별구분도 되어있고 바닥도 평평해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왜 모든 화장실을 이렇게 만들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애인 화장실을 장애인들의 편의성에 맞게 만들어 주었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남았다.

내가 전쟁기념관을 관람하면서 들었던 생각 중의 하나는 ‘전쟁의 참전하셨던 분들 중에 전쟁 중에 입은 부상으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된 분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분들도 언젠간 전쟁기념관에 와서 옛 전우들의 모습도 보고 여러 가지 전시물도 관람하지 않으실까?’, ‘그렇다면 그런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전쟁기념관이 좀 더 장애인들이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았다. 물론 당장 모든 것들을 개선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장애인 편의시설을 잘 안내해주는 표지판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보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비단 전쟁기념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더 많은 기념관이나 박물관들도 장애인들이 마음 편히 다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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