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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여행, 나의 특별함을 감사하게 만드는 힘이 되다
작성자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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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여행, 나의 특별함을 감사하게 만드는 힘이 되다
 

안주희(통통기자단, ahha37@naver.com)
 
내게 여행은 신세계다. 휠체어를 타고하는 여행은 마치 새로운 곳을 찾아 발견하고 개척해나가는 탐험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여행을 꿈꿀 수 없었는데.. 2008년 그 때가 생각난다.

2008년 1월 2일.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내 인생이 180도 바뀌어 버린 날이다. 그 날 이후로 기나긴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중증환자실에서 한 달 이상을 누워서 지내야 했던 초기 시절, 머리는 살아있지만 어깨 밑으로 아무런 감각도 없고, 움직여지지 않아 당혹스러웠던 그 때. 그때 소원은 휠체어에 앉아만 있어도 좋겠다는 마음 뿐 이었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회복되면서 휠체어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사지마비란 장애는 극복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 후 3년이란 병원생활을 마무리하며 처음으로 떠난 여행길.. 휠체어에 몸을 싣고 여행 하는 날이 오다니... 꿈만 같았고 예전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해야 하는 현실 앞에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휠체어 여행.. 강원도를 시작으로 여수, 순천, 통영, 거제도, 제주까지.. 나열해보니 많이도 다녀왔구나.. 그 중에서도 무작정 여행의 묘미를 알게 해 준 거제도‘바람의 언덕’이 생각난다.

지난 2012년 2월 말, TV에서 통영이 멍게, 쑥 도다리 철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때마침 가족모두 시간이 맞았고, 평소 품어왔던 남해여행의 로망을 실현시켜 보고자 숙소만 정하고는 통영으로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계획 없이 가다보니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해 고심하던 중 ‘거가대교'가 떠올라 해저터널을 건너 부산에 가보자는 생각으로 통영에서 거제도로 넘어갔다.

거가대교를 건너기 전 들른 거제휴게소, 휴게소 뒤편으로 내가 바랐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날이 맑지 않아서 안개에 가려진 모습이었지만 ‘이것이 남해바다다!’라고 느끼기에 충분한 감동을 주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동생이 부산은 다음에 가고 거제도 쪽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휴게소에서 관광지도를 봤는데 '바람의 언덕' 이란 곳이 유명하니 그곳으로 가자고.. 그래서 거가대교 해저터널을 통과, 부산엔 점만 찍고 다시 거제로 향했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그 때 동생 말을 안 들었다면 엄청나게 후회 할 뻔했다.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은 어느 강원도 길처럼 꼬불꼬불 했다. 그곳이 어떤 곳일지, 산 속 어디쯤에 있는지 상상하고 있는 사이 첩첩산중 가운데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으니 아름다운 광경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산을 품은 바다라고나 할까? 드라이브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니.. 길을 닦아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바람의 언덕' 2월 말쯤이라 그런지 조용한 분위기, 유유히 날며 바다를 즐기는 갈매기들, 비릿한 바다 내음새, 날이 흐려서 선명하진 않았지만 뿌연 안개사이로 보이는 비취색의 바다, 그 뒤로 전설 속 한 장면 같이 점점이 떠있는 섬들, 어떤 곳인지 모르고 가서 감동이 더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바람의 언덕을 오를 순 없었다. 계단을 올라야 했기에..

이렇게 휠체어 여행은 즐거움과 아쉬움이 공존한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휠체어를 타고 마음껏 둘러볼 수 없는 상황들이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여행 속 아쉬움은 내게 약이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실망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했고,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마음이 주는 기쁨을 맛보게 했으며,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갈 수 있는 도전 정신을 심어주고 있었다..

어느새 여행은, 나의 특별함을 감사하게 만드는 힘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에서 싹튼 작은 소망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기대하게 한다.

이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겠지.. 하지만 사이버 세상은 장애에 구속받지 않으니 여행 할 때마다 나처럼 특별한 정보가 필요한 이들에게 여행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 공간이 삶에 지쳐서 힘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

여행길에서 얻은 소망의 새싹.. 삶의 자리로 돌아와 물도 주고 햇빛도 쏘이며 키우고 있는 지금.. 아직 열매를 맺진 못했지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새싹을 보며 희망찬 내일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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