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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찬란한 빛 스리랑카, 그 곳의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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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mgsof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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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찬란한 빛 스리랑카, 그 곳의 이야기
이혜영(런던정치경제대학교 석사)
JICA(일본 국제협력기구, 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는 일본정부가 개발도상국에 기술 및 무상자금 협력, 청년 외국 협력단의 파견, 지역사회 개발 등을 실시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JICA소속으로 스리랑카에서 특수교육 어드바이져로 일했던 Kikuta Satoshi씨에게 스리랑카 장애인의 현황 및 교육 등과 관련하여 그 내용을 들어보았습니다.
![]() Q.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께요. 안녕하세요, 저는 JICA 봉사단원으로 스리랑카 특수교육 어드바이저로 일한 Kikuta Satoshi라고 합니다. 저는 원래 고등학교 교사였어요. 7년간 사회과목 교사로 일했고, 그 후 6년 동안 특수교육 교사로 일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활동을 마친 후, 현재는 LSE(런던정치경제대학교,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에서 사회정책 및 개발 학과에서 수학 중입니다. Q. 스리랑카에 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부터 국제적인일이나 국제협력 관련된 일을 하고 싶긴 했었어요. 언젠가 30~40대 또는 정년퇴직 후 그런 일을 하고 싶었죠. 그런데 2011년 일본 동북쪽에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했고, 쓰나미가 제가 살던 지역을 삼켜버렸어요. 할머니와 어머니는 탈출하셨지만 해안근처의 병원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실종되셨어요. 많은 동료들과 친구들도 돌아오지 못했고, 제가 살던 지역도 제반 시설이 거의 모두 파괴되었죠. 대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일본은 세계 각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정말 감사했고, 역시 세계는 하나로 이어져있구나 느꼈던 때였죠. 그러면서 다시 국제협력에 대해 심각히 고려했던 것 같아요. 그길로 JICA 봉사단원, 스리랑카 특수교육 어드바이저를 지원하게 되었죠. Q. 스리랑카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스리랑카 교육부 소속으로 Akkaraipattu 지역 교육청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교육 어드바이저로 교육청의 공무원, 관할 구역의 교장, 교사들과 일하는 한편, 로컬 NGO인 Human Link에서도 일했어요. 이 NGO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후원받아 장애학생들을 위한 교육 등을 제공하는 곳이었습니다. 제 업무는 주로 특수 교육교사를 위한 트레이닝 계획, 지역의 특수교육 계획 수립에 대한 조언, 학습 공간 관리 지원, 새로운 커리큘럼 개발 등이었어요. Q. 스리랑카의 장애 학생 교육은 어떤가요? 제가 있었던 Akkaraipattu 지역은 총 인구가 인구가 110,000명 정도 되었고, 63개의 학교가 있었어요. 그런데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는 3곳 밖에 없었죠. 보통 우리가 장애인구를 계산할 때, 대략적으로 전 인구의 2% 정도로 추산해요. 제가 계산을 해보니 400-500명 정도의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실제로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은 고작 40-50명밖에 되지 않았죠. 10%만 학교에 다니고 있는 거였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교통과 관련된 문제였어요. 스리랑카는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어서 학비는 내지 않지만, 앞서 말했듯이 지역에 특수교육을 제공하는 학교가 3곳 밖에 없는 상황이라 학교 근처에 살지 않는 학생들은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학교에 와야 했던 거죠.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기 힘들다는 데에 있어요. 어차피 교육을 받아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건 일부분 사회의 인식과도 맞닿아 있는 건데, 스리랑카에서는 장애인들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적거나 없다고 생각되고 있었어요. 장애인들은 도움을 받아야 되는 대상일 뿐 일을 할 수 있는 인재는 아니라는 편견이 있었죠. 실제로 장애인들은 사회생활을 하기 보다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취업률도 매우 낮았습니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슈는, 스리랑카 내에서 특수교육교사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이 몇 개 안 된다는 것이에요. 결과적으로 특수교육 교사도 적었고, 일부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 교사들이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죠. 반면에 일부 학교장들은 특수교육 교사를 일반 학생을 가르치는 데에 배정하기도 했어요. 학교가 학생들의 시험성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지역 교육청의 권역은 종교에 기반해서 나눠져요. 제가 일했던 Akkaraipattu지역은 무슬림을 기반으로 한 곳이었고, 불교 학교들은 다른 교육청에서 관할하고 있었어요. 특수교육 학급에 학생 출석률이 낮을 때 교장선생님은 교사들과 모스크 사람들과 함께 부모를 설득하거나 가정 방문을 하기도 했고, 모스크를 통해서 안내방송을 하기도 했죠. 그 결과 성공적으로 출석률을 세배나 끌어올릴 수 있었어요. ※ 본 기사는 11월, 12월에 걸쳐 연재합니다. 다음 호에서는 스리랑카에서 특수교육에 대한 지원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Human Link Sri Lanka’라는 NGO활동을 통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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