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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우리 봉사단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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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우리 해외봉사단 2기 – 2015 스리랑카 마음과 마음끼리는 통하는 길이 있다.
다양함을 인정하고 다함께 어울리며 소통의 벽을 허물었다.
2기 김다솜
2014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렸다. 의미를 부여한 특별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내게 있어서 평소와 다름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내게 특별한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시초가 되었다. 그날의 평범한 행동으로 나는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참여를 했고, 대상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행동 하나가 나에게 큰 행운을 안겨준 것이다. 장애인인식개선 UCC를 제작하면서 제일 많이 든 생각도 이것이었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특별하지 않은, 그저 똑같은. 이 세 가지의 다른 듯 다르지 않은 말들이 UCC의 모토였다. 그리고 내게 일어난 해외봉사라는 부상 또한 나의 특별하지 않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아마 이것은 내게 하나의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 같다.

시상식을 가고난 뒤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학교생활을 하고, 그렇게 나는 고3이 되었다. 고3의 첫 시작을 밤샘고민과 함께 보낸 그때, 한통의 메일을 받게 되었다. ‘해외봉사 관련 준비사항입니다’ 라는 짤막한 문구를 보며 나는 그때 떠올리기 시작했다. 잠시 까먹고 있었던 엄청난 행운의 부상을 말이다. 무슨 정신으로 준비했는지 채 기억도 하기 전에 어느새 나는 인천공항에 와있었다. 꽤 어색한 또래의 아이들과 연구원분들 사이를 비집고 멍하니 홀로 서있었다. 분명 나에겐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헤쳐 나가야하나, 잘 지낼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머리를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가슴이 뛰기도 했지만, 그것과 비례하게 걱정이라는 감정도 생겨났다. 첫날은 걱정과 설렘으로 비행기를 탔고, 설렘보다 걱정이 커진 상태에서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첫 발을 내딛었다.

차마 숨을 쉬기도 전에, 훅 하고 들어오는 습한 공기가 먼저 피부에 닿았다. 끈적끈적한 느낌이 마치 여름날 컨테이너박스에서 선풍기도 켜지 못한 채 홀로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다. 습기가 가득 찬 공항, 그리고 공항 밖을 나서도 습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해지면 심해졌다고 하는 편이 맞다. 우리는 곧바로 숙소로 향했고, 숙소에서 장시간 비행으로 녹초가 된 몸을 녹였다. 시원한 에어컨과 함께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2015년 2월 5일 스리랑카에서의 아늑하고, 시원한 첫날 아침을 맞이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YMCA였다. 그곳은 장애인과 청소년들이 매년 8월에 만나서 축제를 벌이기도 하는, 꽤 흥겨운 곳이라는 사전조사를 했기 때문에 많은 상상을 하며 버스에 탔다. 드디어 도착한 YMCA는 내가 생각한 것과 심히 다른 곳이었다. 왠지 시골에 할아버지가 반겨주실 것만 같은 외양이 나를 반겨주었는데, 외양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마음에 안을 좀 더 살펴보기로 했다. 안내해주신 분과 같이 안을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많은 부족한 점이 보였다. 다니기 불편한 통로부터, 열악한 환경의 화장실 그리고 부실해 보이는 경사로까지. 모든 것이 안타까웠다. 좋은 취지와 함께 시설도 뒷받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었다. 그 뒤 우리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발표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늦게 왔고, 문화교류 프로그램으로 젓가락으로 젤리 옮기기와 몸으로 말해요 등이 실행되었지만, 많이 미숙하고 버벅거리는 진행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많이 웃어주며 즐거워해줬다. 그 후 장애인인식개선을 위한 수상작을 활용한 PPT발표가 있었다. 내가 속한 두드림팀은 서로 맞춰보며 만발의 준비를 하였지만, 앞서 배치기팀이 발표를 하면서 우리팀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 지루해하였고, 발표는 점점 길어졌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반응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한국노래를 모른다는 반응과 호응을 해주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팀은 긴장이 되었다. 긴장을 가득안고 발표차례가 되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두드림팀의 발표를 지켜보았다. 기대한 것과는 살짝 못 미친 발표에 다들 아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그 날 우리 팀의 생각은 기대와 달리 잘 진행되지 않아 씁쓸했다는 의견과 기분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날을 통해 우리가 고쳐야할 점과 발전방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회의를 통해 많은 것을 고치고 다듬었다. 그렇게 첫날밤이 저물었다.



그 다음날 우리가 방문한 곳은 the colombo Friend in Need Society(의족, 의수 제작 민간단체)였다. 이곳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손과 발의 장애가 생기게 된 사람들에게 무료로 의족과 의수를 제작해주는 단체였는데, 아쉽게도 스리랑카의 단 한 곳이며, 기부를 통해 운영된다고 했다. 참 안타까웠다. 기부가 끊기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과 스리랑카의 단 한곳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설안의 기구들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헤지고 녹슬어 과연 꼭 맞춰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게끔 했다. 재활하는 공간도 많이 불편하고 좁아보였다. 무엇보다 지방에도 내려가서 치료를 해준다고 말해 이동하는 차안을 보니, 보닛과 제작 기구들이 매우 낡아보였으며, 차또한 벌써 8년이 넘은 기동성이 좋다고 생각되지 않는 차였다. 이 기관을 방문하며 한 가지 확실한 것이 보였다. 아직 스리랑카는, 그것도 스리랑카의 수도인 콜롬보조차 장애인의 대한 지원이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 우리나라의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으로 간곳이 ‘jinananda childrens 보육원 ‘이었다. 이곳에서는 전날 밤 회의를 통해 수정한 PPT와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매끄럽게 보여주고, 진행시켜야했다. 여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보육원 안으로 가는 길이 참 위태로웠다는 점과 문화교류 프로그램 때 웃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배웅을 하는 모습 3가지였다. 보육원으로 가는 길은 부서진 계단과 비가 새는 지붕으로 열악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가, 친절한 아이들의 호의가 보여서 금방 걱정이 사그라 들었다. 이러한 아이들이라면 적어도 시설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그래도 이곳 아이들의 미소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해 보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루 빨리 이곳에 지원을 하는 사람이 돼서 이곳에 매년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전날 보다 매끄러운 PPT 진행과 호응이 좀 좋은 아이들이 있어서 좋았고,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제대로 시행해서, 부채 만들기를 통해 친목을 다지고, 같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로 언어가 달라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다양함을 인정하고 다함께 어울리며 소통의 벽을 허물었다.

중간에 넬슨이라는 대학생이 내게 사진을 찍어 줄테니 아이들과 함께 앉으라는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언젠가 꼭 한번 넬슨을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많은 아이들이 배웅을 하러 나와서 마음이 뭉클했다. 이제가면 언제 보지라는 마음과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나 보다. 앞으로도 꾸준히 그곳에 가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며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 팀은 아이들의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친해지기 위해 이메일과 페이스북을 교환한 것 등등. 그렇게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는 잠자기 전 다음날 있을 마지막 결과발표PPT를 하기 위해 꽤 공을 들이며 회의를 했고 새벽이 가까운 시간까지 토의를 하며 소위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렇게 바쁘고 즐거운 하루였던 스리랑카에서의 두 번째 밤이 가고 있었다.

세 번째 날 간곳은 동물원과 켈르니어 사원이었다. 문화탐방을 목적으로 간곳이었는데, 첫 번째로 말한 곳은 동물원이다. 이곳은 꽤 많은 동물들이 사는 곳으로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었다. 그중 위 사진에 나온 동물이 제일 귀여웠는데, 눈빛이 많이 슬퍼보였다. 사실 이 동물원은 동물들의 관리가 열악하며,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는다고 들었다. 그 말이 들리기 무섭게 동물들의 행동도 많이 부안해보이며, 한눈에 봐도 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열악한 곳이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즐겁게 탐방하며 다들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며 재밌는 동물원 탐방이 되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들린 탐방은 켈르니어 사원이었다. 이곳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며, 사진을 찍을 때도 사람과 같이 나오게 찍으면 안 될 정도로 엄격한 곳이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함이나 향을 들고 다녔는데, 모두 하얀 옷을 입거나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어서 독실한 불교의 나라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불교가 주를 이루는 나라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뿐 눈으로 제대로 본적은 없었는데, 이날 이 사원을 통해 보게 되어서 참 신기한 하루였던 것 같다. 그리고 스리랑카에서의 마지막 날 밤 우리는 PPT결과 발표를 하게 되었고, 우리 팀은 그 마지막 밤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문상과 함께 마지막 날 숙소에서 마피아게임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웅큼 다가온 스리랑카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맘속에 묻은 채 잠이 들었다.

스리랑카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인도양, 바닷가를 한번 들리고 기념품도 사며 서서히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해서 나는 미니다큐를 위한 인터뷰를 한 번하고 서서히 스리랑카를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팀원들과도 즐겁게 놀고, 해외에서 봉사도하는 4박 6일 이라는 기간. 이 짧고 굵은 기간 동안 엄청난 행운을 사진과 느낌으로 간직하며 그렇게 비행기에 올라탔다. 참 좋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어있을 것 같다. 첫 해외로의 발걸음은 참 상쾌했었다. 안녕! 스리랑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