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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우리 봉사단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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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우리 해외봉사단 4기 – 2016 스리랑카 스리랑카, 우리의 이야기
‘함께하는 우리’처럼, 모두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이제 막 해가 뜨려는 듯 몽실한 구름 사이로 햇빛이 야금야금 비쳐왔다. 푸른 하늘, 미적지근하고 습기 가득한 공기, 한국과는 다른 이질적인 냄새가 쏴하고 들어온다. 내 눈에 처음 들어온 스리랑카는 그런 모습이었다.

독서실에서 갑자기 울리는 진동소리에 놀라 문자를 확인했을 때의 그 설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어렴풋이 상상만 하던 꿈들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나는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있던 너무도 큰 행운 앞에 떠밀리듯 세워졌다. 해외봉사.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해도 어색하기만 하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불안해서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런 내가 해외봉사를 결심한 건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모전에 적어냈던 ‘누구나 할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하게’ 라는 그 말에 어울리는 떳떳한 선택을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의 이 결정이 내 인생에 후회 없는 선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스리랑카에서 만나게 될 보육원 친구들은 내전과 자연재해로 인해 가족을 잃은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걱정이 되었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겪은 아이들도 있을 텐데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보육원에서 만난 친구들은 내가 이제껏 보았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 순수하고 착하며 똑똑하고 작은 일에도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아이들과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건 단 하나, 바로 언어였다. 눈물 흘리며 저 멀리서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견우와 직녀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분명히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굳건한 언어의 장벽이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었다.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이걸. 패닉도 잠시, 몇 시간 뒤 우리 팀에서는 자연스럽게 해결책이 나왔다. 바로 세계 공용 언어 바디랭귀지. 우리는 짧은 영어 단어와 몸짓을 이리저리 섞어가며 동영상 촬영 계획을 설명해주고 카메라가 낯선 아이들에게 카메라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보육원에서의 마지막 날, 완성된 동영상을 보육원에 있는 모든 아이들 앞에서 발표했다. 화면 속에 보이는 그들의 얼굴은 더 이상 모르는 나라 사람들의 얼굴이 아닌 어느새 정이든 친구의 얼굴이었다. 떠나기 직전, 이제야 겨우 맘 편히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는데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면서 헤어지는 게 아쉬워 머뭇머뭇 하는 나에게로 내 짝꿍이었던 ‘사미이르’와 ‘하시타’가 편지를 건네주었다. 겉에는 한국 국기가 그려져 있고 안을 펼치면 내 얼굴이 그려져 있는 편지. 캐리어에 넣으면 짐에 눌려 혹시라도 구겨질까 싶어 그 후 남아있던 얼마간의 일정동안 나는 어딜 가든 그 편지를 가방 안주머니에 한 구석에 넣어놓았다. 지금은 내방 책상 위에 있는 그 편지를 볼 때마다 사미이르와 하시타, 그리고 보육원 친구들이 떠오르고 그때마다 생각한다. 아무래도 내가 그들에게 나눠주고 온 것보다 배워온 것이 더 많은 것 같다고.

- 조예지 (작품공모전 웹툰부문 대상 수상자)




처음 장애인 인식개선 작품공모전 포스터를 보았을 땐,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참여를 했는데 뜻밖에도 수상이 되었다. 수상한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는데, 며칠 후 스리랑카 해외봉사의 기회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참가여부를 묻는 연락에 나는 밤 세워 고민을 했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이 나 자신에게 좋은 선택이라며 스스로 되뇌었지만, 사실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스리랑카를 떠나기 전, 그리고 도착해서도 현지 아이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을 하였다. 2년 전 청소년으로 이 해외봉사에 참여했었다는 우리 팀 리더는 어떻게든 의사소통은 된다고 하였지만, 난 ‘어찌 이리도 막연한 걸까’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그 말은 진짜였다! 깊은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짧은 영어로 대화가 오가면서 정말 즐거운 소통시간을 가졌다.

스리랑카 현지 사람들은 너무나도 친절했다. 눈만 마주치면 미소를 건네며 인사를 해주었다. 버스에서 바깥을 구경할 때면 현지 사람들이 인사를 해주고 장난도 쳤다.

'청소년 장애인 인식개선 공모전'이라는 매개로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이런 소중한 인연이 만들어졌다는 게 스리랑카에 있는 시간 내내 감사하였다. 서로가 서로를 안 지 얼마 안 된 상태인데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너무 즐거웠다. 스리랑카에서의 첫날은 시간이 느리게 가서 ‘왜 이렇게 시간이 안가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여기에서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스리랑카를 떠나기 전에는 같이 가는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현지 청소년들과는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등 엄청난 걱정이 들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뭘 그리 많은 걱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 공모전에 참여한 친구들은 결국 나와 관심사가 같은 것이 아닌가. 만약 그때 가지 않겠다고 선택했다면 매우 후회했을 것임에 나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난 지금도 스리랑카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며 웃음을 짓곤 한다. 현지 아이들은 정말 내가 맹세하건데 예쁘지 않은 친구들이 한명도 없었다. 단순히 외적으로 보이는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와 함께하면서 보여주는 행동이, 미소가, 순수한 마음이 모두 예뻤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서로 마음만 통한다면 의사소통에는 벽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박유정 (작품공모전 동영상부문 최우수상 수상자)





한국에 돌아와 그사이 생긴 공백을 채운다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4일간의 기억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작은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스리랑카를 가기 전 한 달이란 기간 동안 많은 준비를 했다. 연구원 측에서 과제로 제시한 동영상을 시청하고, 방문할 보육원도 조사하고, 동영상을 만드는 방법도 배우고. 그러한 준비기간이 있었기에 더욱 더 설렜고,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현지 학생들과의 소통이었다. 평소에 말수도 적고, 혼자 작업 하는걸 좋아하고, 살짝 소심하기 까지 한 내 성격에 언어가 다른 학생들과 활동을 하며 동영상 작업도 해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일까 보육원에서 첫날, 학생들을 만나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게 됐을 때 나는 유난히 애를 먹었다. 그때 주저주저 했던 내 태도가 이번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기도 하다. 동영상 작업은 쉽지만은 않았다. 편집을 할 때 밤을 꼬박 새면서 정말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상영회에서 영상을 보고 웃어주던 아이들의 모습에 언제 고생했냐는 듯 행복했었다.

여로 모로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함께 하기에 즐거웠던 그런 여정이었다.

- 이진영 (작품공모전 일러스트부문 최우수상 수상자)





처음 스리랑카에 간다고 했을 때는 스리랑카가 어떤 곳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설렘 반과 불안감 반으로 스리랑카 가는 날을 손에 곱았다. 그리고 수요일 늦은 밤 스리랑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자 내 모든 일상은 잊히고 오로지 기대감과 설렘만이 남았다.

스리랑카의 보육원에서 활동을 한다고 들었을 땐 내가 과연 그들을 편견 없이 대할 수 있을까? 친해 질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이어서 쉽사리 처음 보는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걱정과 달리 오히려 보육원 친구들이 먼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히려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그 친구들의 맑은 눈과 밝은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 계속 짜증 부리고 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부렸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 친구들의 능력은 대단했다.

나는 걱정이 많았다. 소통이 될 지. 하지만 내 걱정은 쓸데없었다. 소통은 문제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소통을 원했기에 서로 다른 언어이지만 눈빛과 행동으로 모든 것이 통했다. 그리고 그들의 연기와 카메라 촬영 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났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타고난 기질로 각도와 도구 활용 등 여러 가지를 활용하여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을 했고 그 모습은 즐거워 보였다.

동영상 제작을 위해 밤을 꼬박 새우느라 잠을 자지 못해 힘들었지만,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나한테 이런 기회가 왔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완성된 영상을 보는 그 친구들의 눈빛과 즐거워하는 모습에 마음 한 쪽에 뿌듯함이 들었다. 보육원에서 헤어질 때 차마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왠지 내일 또 만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리랑카에서 분명 힘들고 지치고 하기는 했다. 하지만 인연으로 만난 언니들과 오빠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 또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멋진 경험은 아마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 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만남’이라는 단어 저 편에는 ‘헤어짐’이라는 단어가 있고 그 ‘헤어짐’이라는 단어 저 편에는 ‘다른 만남’이라는 단어와 ‘또 다시 만남’이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 권다현 (작품공모전 광고카피부문 최우수상 수상자)





장애인 인식개선 퀴즈대회에 참가하자는 친구의 권유로 퀴즈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게 1등을 하게 되었다. 1등에 대한 부상으로 해외봉사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낯을 많이 가리고, 혼자서는 멀리 가본 적도 없는 나에게 해외봉사는 너무 큰 문제가 되었다. 시상 후 해외봉사활동에 대해 설명해주는 연구원 직원들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가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다. 누구는 가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못 가는 해외봉사를 나는 내칠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참가여부를 결정해야하는 시간을 얼마 남겨두고, 누군가가 간절히 원했을 1등을 했으니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해외봉사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했다.

스리랑카에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들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수록 낯설지 않은 아이들의 미소가 너무 좋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고작 내가 아는 영어 단어 몇 개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넬 때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모두들 잘 받아주고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는 아이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통하지 않는 말로 우리가 계획한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자신들의 모습이 영상에 나오는 것을 보고 꺄르르 웃는 모습도 귀여웠다. 하루 이틀 점점 봉사할 시간이 줄어들자 끝났으면 했던 시간들이 점점 아쉬워졌고 하루만 더 있다 가면 더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해외봉사 참가가 나에게 정말 큰 경험이 되었고 다음에 이러한 기회가 오게 되면 더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다.

- 박주영 (퀴즈대회 대전지역 우승자)


함께하는 우리 해외봉사를 가게 된 것은 갔다 온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운명적인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진로를 심리학과에서 특수교육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상담한 지 며칠 후 게시판에서 ‘희망의 큰북을 울려라 울산대학교’ 안내를 보았다. 그리고 얼떨결에 우승을 하고, 해외봉사에 대한 안내메일이 오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것이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간 바지라 스리 보육원은 정말 새로웠다. 우리 팀에 배정된 현지 친구들이랑 처음에는 엄청 어색했는데, 간식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자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공기놀이 방법을 알려주고 함께 놀고, 건물 밖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현지 친구들이 따줘서 먹어도 보고, 카메라 사용법도 전해 준 후 카메라로 사진도 찍으면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이번 경험들을 통해 고교시절의 중반 즈음 갑작스럽게 바꾼 꿈을 더욱 더 피어나도록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너무나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해외봉사 이름인 ‘함께하는 우리’처럼, 모두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 김규희 (퀴즈대회 울산지역 우승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육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스리랑카 인사말 ‘아유보완’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계속 되뇌었다. 보육원 친구들이 UCC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지 걱정도 되었다.

우리와 보육원 친구들 간의 의사소통에는 언어의 장벽이라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마지막 날, 보육원 친구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우리가 만든 영상을 상영했다. 아쉬운 점이 많은 영상이었지만, 다행히 아이들이 재미있어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스리랑카 현지 문화 뿐 아니라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 이윤호(퀴즈대회 전주지역 & 왕중왕전 우승자)





스리랑카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렜다. 나는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그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동영상을 찍을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보육원에서 내 왼쪽에는 ‘나두’, 오른쪽에는 ‘삼밧’이 앉았다. 나두는 굉장히 개구쟁이였고 삼밧은 차분하고 좀 과묵했다. 그들과 굉장히 빠른 시간에 친해졌다. 나두랑 너무 많이 장난을 쳐서 팀원들한테 혼나가도 했다. 그 친구들은 영어를 쓰긴 했지만, 능숙하지는 못했다. 나도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해서 비슷한 수준으로 영어를 했다. 그 친구들이 스리랑카어로 말을 할 때는 내가 못 알아 들으니까 나를 그 언어로 놀리기도 했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 나두가 나에게 편지를 써 주었다. 편지에는 한복을 입은 나와 나두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었다. 예쁘게 꾸미고 정성스럽게 쓴 편지가 너무 고마웠다. 나는 해준 것이 없어 너무 미안했다. 이 편지는 평생 보관하려고 한다. 그 곳 친구들은 정말 밝고 순수했으며 같이 있으면 웃음꽃이 절로 폈다. 그 친구들과 지내면서 힘든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즐겁고 행복했다. 그 친구들을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 이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좋았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제공해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짧은 시간에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것 같다.

- 박예리 (퀴즈대회 서울지역 우승자)